조형균 "고전의 힘 '시라노', 천천히 흐르는 이야기와 낭만 있죠" [인터뷰+]

입력 2025-01-12 09:00   수정 2025-01-13 00:22


"제게 '시라노'는 다른 작품들이랑 똑같습니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더 소중하다는 마음은 없어요. 다만 배우로서 가는 길의 이정표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내비게이션 안내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해 앙상블부터 주연 자리까지 차근차근 올라온 18년 차 배우 조형균은 이같이 말했다. '시라노'는 2020년 조형균에게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작품이다.

3연 무대에 재차 오르고 있는 그는 "상을 받아서 부담감이 있다. 설렘이 49%라면 부담감은 51% 정도"라면서도 "다만 상은 부수적으로 감사하게 따라오는 부분이다. 내겐 그동안 했던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다"라며 흔들림 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고 밝혔다.

뮤지컬 '시라노'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이 실존 인물인 에르퀼 사비니엥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Hercule-Savinien Cyrano de Bergerac)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각색한 작품이다.

극 중 시라노는 낮은 자들을 위해 콧대를 드높이는 영웅이지만, 사랑하는 여인 록산을 위해서는 마음을 감추고 헌신하는 인물이다. 가스콘 부대를 이끄는 용맹한 이상주의자이자 만인의 존경을 받는 재치 넘치는 시인인 그는 록산 앞에서는 한없이 인간적이다. 유일한 콤플렉스는 커다란 코다. 아름다운 글귀로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낭만주의자임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조형균은 "시라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인 것 같다. 불합리한 것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면서 약자들 편에 서지 않나. '강강약약(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캐릭터다. 또 한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한다. 의리도 있다. 외모 빼고 다 가진 S급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랑 닮은 부분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5년 만에 돌아온 '시라노'는 대본, 음악 등을 더 섬세하게 다듬었다. 조형균은 "전체적으로는 똑같다고 보는데,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인물 설정이 조금 더 발전됐다. 크리스티앙의 배경이나 록산을 향한 그의 사랑이 더 부각됐다. 록산도 훨씬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성향으로 표현됐다. 시라노도 미세하게 바뀌지 않았나 싶다"고 전했다.

'왜 바뀌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조형균은 "재연의 틀에 갇혀 있을 수 있지 않나. 바뀐 이유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으려고 했다. 재연 기준으로 목소리를 내면 새로운 좋은 것들을 막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캐릭터들이 다채로워져서 좋았다"고 말했다.

'시라노'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건 단연 길고 커다란 코일 테다. 조형균은 "코를 붙이니까 노래가 더 잘 되더라"며 웃었다. 제작된 코를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는 방식으로, 하나의 코를 보통 2회 정도 쓴다고 한다. 회차당 여분을 포함해 총 2개를 준비한다. 조형균은 "분장 선생님이 코를 붙여주는데 의외로 굉장히 빨리 끝난다. 20분 정도면 붙이고, 뗄 때는 3초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재연 때는 류정한, 최재웅, 이규형까지 형들과 함께 시라노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이번 시즌에서는 최재림, 고은성 등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조형균은 "이전에는 형들을 따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형들이 하는 걸 흡수하면서 내 것을 하기 바빴다. 이번에도 같이 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자주 지켜봤다. 분명 새로운 에너지에서 나오는 신선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지 않나. 그런 걸 많이 찾아봤다"고 밝혔다.

앞서 최재림은 공연 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중단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조형균은 "제일 속상한 건 재림이 본인이다. 배우들도 많이 응원해 줬다. 지금은 잘 회복이 돼서 다행이다"고 전했다.

이어 "뮤지컬 배우들은 차라리 손발이 다치면 공연할 수 있는데 목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항상 관리해야 한다. 결국 그것도 배우의 책임이다. 속상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직업이 그만큼 누리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관객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때문에 체력·컨디션 관리는 물론 실력 향상을 위한 배움의 자세는 숙명이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시라노의 코처럼 본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냐는 질문에는 "난 예전부터 특출난 게 없었다. 이미지도 그렇고 늘 애매한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극한 평범함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내 "그 덕분에 여러 작품을 경험해봤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실제로 앙상블부터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갈고닦아온 조형균은 업계에서 어떤 배역이든 '믿고 맡기는' 배우로 통한다. 연기하는 본인을 시라노처럼 시적으로 표현해 달라는 요청에 조형균은 "느리게 가지만 결국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는 거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끝으로 그는 '시라노'가 지닌 고전의 힘을 강조했다. 조형균은 "공연을 본 지인들이 천천히 흐르는 고전을 본 것 같다고 하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관객들이 빨리 끌려들도록 스피디하고,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자극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루는 요즘 '시라노'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잊지 말아야 할 고전의 힘, 천천히 가는 이야기의 힘, 그리고 낭만주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오늘 밤 내가 저 달나라로 돌아갈 때 가져가야 할 단 한 가지. 티 한 점 없는, 부끄러움 한 점 없는 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시라노가 죽기 전 내뱉는 말이다.

"시라노의 모든 걸 설명해주는 좋은 대사라 생각해요. 결과를 몰라도 주어진 길이니 묵묵히 걸어간다고 하잖아요. 배우 인생에도 많이 접목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암흑뿐인 길이거든요.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대죠. 그런데도 배우가 잃지 않아야 하는 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인 것 같아요. 그래야 좋은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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