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와 어린 펭귄의 숭고한 여정…어른도 울린 '긴긴밤' [리뷰]

입력 2025-01-12 09:00  

락토핏 당케어 광고 이미지
난각막NEM 광고 이미지

걷고 또 걸었다. 흰바위코뿔소와 어린 펭귄은 넓게 펼쳐진 초원, 뜨거운 사막, 맑은 호수를 지나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긴밤'을 함께 걸어 나갔다. 목적지는 단 하나, 펭귄이 헤엄쳐 놀 수 있는 푸른 바다다.

뮤지컬 '긴긴밤'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이 새끼 펭귄의 아빠가 되어 바다를 찾아 나선 과정을 그린다. 2021년 발간돼 인기를 끈 동명의 장편 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나는 펭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씩씩하고 앳된 목소리로 공연은 시작된다. 이 작고 귀여운 펭귄은 '코뿔소 아빠' 노든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 노든은 대체 어떤 코뿔소였길래 어린 펭귄의 마음속에, 아니 삶에 이토록 깊숙이 자리 잡은 걸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랐다.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긴 코를 가진 코끼리 무리에서 홀로 뿔을 달고 있는 자신이 왠지 모를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누굴까. 이 질문은 노든을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했다. 코끼리들의 응원을 받으며 바깥세상으로 나간 노든은 비로소 코뿔소인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또 다른 코뿔소를 만나 가정도 이룬다.

하지만 세상은 그와 그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위협했다. 밀렵꾼에 의해 아내와 아이를 잃었고, 여정 중에 붙잡혀간 동물원에서 만난 친구 앙가부도 끝내 곁을 떠났다. 노든에게 인간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의 품에 작은 알이 들어왔다. 펭귄 웜보와 치쿠가 전쟁 속에서도 소중히 지켜오던 알을 받아들게 됐다. 치쿠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노든은 바다로 향했다. 가진 정보라고는 '푸르른 지평선' 딱 하나였다.


뮤지컬 무대에서 다시 태어난 '긴긴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개방적인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동물들의 관계성, 이들의 치열하고 애틋한 여정을 밀도 있게 풀어내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어떠한 것도 틀에 가두려 하지 않았다. 노든과 펭귄의 여정은 무대 바닥 LED와 조명을 통해 배경의 변화, 움직임의 흐름 등을 짚어주는 방식을 취했다. 내딛는 걸음을 따라 불이 들어오는 LED를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이들과 같이 발을 맞추는 느낌이 들고, 무대 바닥이 하나의 색으로 환하게 켜지면 그곳이 곧 들판, 사막, 바다가 됐다.

동물의 외형과 이들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방법도 분장으로 대놓고 보여주기보다는 상징적인 특징만을 강조했다. 캐스터네츠 소리를 통해 펭귄의 걸음걸이를 연상케 했고, 펭귄알은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축구공으로 대신했다. 한평생을 동물원에 갇혀 산 앙가부의 목에는 방울이 달려 있었고, 여정에 나선 노든은 뿔이 달린 두꺼운 가죽 가방을 들고 그 안에 매 에피소드에서 생겨난 소품을 넣었다.

삶의 무게만큼 두둑해진 가방. 다리가 성치 않고, 뿔까지 잘려나간 노든은 펭귄에게 바다를 향해 홀로 나아가라고 외쳤다. 울며불며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펭귄. 그런 펭귄을 언제나처럼 안아준 노든은 "바다를 찾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또 다른 여정. 펭귄은 바다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원작 동화에 이어 뮤지컬도 어른들을 울렸다. 동물들의 서사에서 발견한 게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일 테다. 만남, 죽음, 이별, 사랑, 전쟁 등 작품 곳곳에 녹아있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다. 온갖 고난과 역경에도 알을 지켜낸 연대의 힘, 수영 연습을 시키기 위해 물가로 향하고 밤에는 기꺼이 품을 내어주는 숭고한 헌신, 무모한 길에서도 서로에게 나아갈 동력이 되어주는 사랑의 힘까지. 기나긴 밤은 어둡고 추웠지만, 그 끝에는 온전한 성장이 있었다. 그리고 온전한 성장을 가능케 했던 완전한 사랑의 과정들.

극 말미 노든은 펭귄에게 "넌 이미 훌륭한 코뿔소"라고, 펭귄은 노든에게 "훌륭한 펭귄"이라고 말해준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자의 길과 방식을 인정하고 응원해 주는, 그야말로 경계를 뛰어넘은 사랑이다. 이보다 은근하게 '함께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마지막까지 어떠한 교훈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묵직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입소문을 타며 매진 행렬이 이어졌던 '긴긴밤'은 연장 공연까지 진행, 12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오는 13일 열리는 '한국뮤지컬어워즈'의 대상 및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 수상 여부에도 기대가 모인다. 대형 뮤지컬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시기에 뛰어난 작품성과 가슴 따뜻한 메시지로 대학로에 단비를 내린 '긴긴밤'이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