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파트 입주장엔 장사 없죠. 몇 달 전만 해도 전용면적 84㎡(34평) 전세 물량은 7억~7억5000만원 수준에 형성돼 있었는데 현재 낮게는 5억3000만원까지 나와 있어요."(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래미안 라그란데' 인근 A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대표)
이달 10일 입주를 시작한 서울 이문동 래미안 라그란데(3069가구, 이문1구역 재개발).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씨에도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실수요자들은 내 집에 들어간다는 기대감에 추위를 잊은 것처럼 보였다. 커뮤니티니센터는 입주 절차를 밟기 위해 모인 실수요자들로 가득 찼고, 단지 내에는 짐을 실어 나르는 이삿짐센터 차량과 인테리어를 위해 오가는 트럭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분위기는 활기찼지만, 가격은 그렇지 못하다. 단지 인근에 있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와 네이버 부동산 등에 따르면 래미안 라그란데 전용 84㎡ 전셋값은 5억3000만~7억5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7억원을 밑도는 전세 물건은 없다시피 했지만 입주장이 다가오자 스물스물 내려간 결과다. 전셋값 범위는 넓지만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가격대는 6억~6억5000만원 수준이다. 집에 대출이 끼지 않은,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물건이다.
전용 59㎡ 전세 물건은 4억7000만~7억원까지 나와 있다. 5억~5억5000만원대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 4억원대 물건은 대출이 있거나 집주인 사정상 시세보다 낮게 나온 것이다.
이 단지 인근의 B 공인 중개 대표는 "5억원대 물건은 통산 집에 대출이 껴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일부 집주인들 중에는 괜히 시간 끌다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이자를 내는 것이 싫다며 싸게 전셋집을 내놓기도 한다. 6억원 이하로 나온 매물 중에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물건도 있어 세입자 입장에선 이런 매물을 잡는 게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근처의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서울에서 전용 84㎡ 신축 아파트 전셋집을 5억원대에 구하는 게 사실상 어렵지 않느냐"며 "시장에 나온 전세 물건이 빠르게 소화되진 않고 있지만 시세보다 낮은 가격대 중 동·호수가 좋은 물건부터 차례대로 소화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3000가구가 넘는 대단지가 입주하다 보니 주변 아파트 전셋값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근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래미안아트리치' 전용 84㎡ 전셋값은 가장 높게는 6억2000만원에 나와 있지만 실상은 5억6000만~7000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래미안아트리치 내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래미안 라그란데 입주가 시작되면서 일대 아파트 전셋값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 단지 집주인들은 6억원에 전세 물건을 내놓는데 보통은 조정을 해 5억원 후반까지 가격이 내려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휘경SK뷰 인근 D 공인 중개 관계자도 "입주장으로 집주인들이 제값에 전셋값을 받지 못해 속상해한다"며 "새 아파트 전셋값이 6억원 이하로 형성돼다 보니 세입자들도 새 아파트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동대문구 전셋값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오는 6월엔 휘경3구역을 재개발한 '휘경자이 디센시아'(1806가구)가, 오는 11월엔 이문3-1구역을 재개발한 '이문아이파크자이'(4311가구)가 집들이에 나선다. 동대문구 인근 성북구 장위동에선 3월 '장위자이레디언트'(2840가구)도 입주한다.
휘경동에 있는 E 공인 중개 대표는 "래미안 라그란데 입주 이후엔 장위동과 휘경동에서 입주가, 올해 말에는 다시 이문동에서 새 아파트가 입주하는 만큼 당분간 일대 전셋값이 부진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서울에 공급량이 부족하다고 하니 실제 가격은 입주 시점에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1월 첫째 주(6일) 기준 서울 전셋값은 전주보다 0.01% 하락했다. 동대문구 전셋값은 0.08% 내렸다. 지난해 11월 넷째 주(25일) 하락 전환한 이후 7주 연속 내림세다.
매매 심리도 부진하다. 동대문구가 포함된 동북권 전세수급지수는 이달 첫째 주 95.5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주 기준선인 100 이하로 접어든 이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워질수록 집을 찾는 세입자보다 집을 내놓는 집주인이 많단 뜻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세입자 우위 시장이란 얘기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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