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도시 어떻게 살릴까…창원서 펼쳐지는 LG의 실험

입력 2025-01-13 05:00   수정 2025-01-13 06:38

락토핏 당케어 광고 이미지
난각막NEM 광고 이미지


지난 9일 찾은 경남 창원의 LG전자 1차 협력사 ‘사이언스’의 사출 공장은 마치 대기업의 스마트 공장을 연상하게 했다. 건조기와 세탁기, 스타일러(의류관리기)등 LG전자의 주력 제품 핵심 모듈의 사출부터 조립까지 이뤄지는 이뤄지는 이 공장의 ‘심장’은 한 대에 대형 버스만한 크기의 사출기 12대다. 한 줄로 늘어선 사출기에선 마치 뻥튀기가 나오듯 길이가 2m는 족히 되는 스타일러의 플라스틱 본체가 쉴 새 없이 찍어져 나왔다. 만들어진 본체는 로봇 팔을 통해 컨베이어벨트에 옮겨져 조립 공정으로 이동했다. 하루에만 3000개 이상의 제품 사출이 가능한 이 공정의 담당 인력은 엔지니어 3명 뿐. 불량률은 0.01%도 되지 않는다.

이 같은 변화를 가능케 한 지능형 자율사출 성형시스템(ICIS)은 LG전자와 사이언스의 모회사 이코리아산업이 2022년 공동 개발한 결과물이다. 2017년부터 4년 간 8000억원을 투자해 LG가전의 본산인 창원사업장을 최첨단 스마트공장으로 전환 중이던 LG전자는 2021년 1차 준공을 앞두고 핵심 기초 공정인 사출 최적화를 위한 ‘파트너’ 물색에 들어갔고, 20여년 간 LG전자에 납품해온 사출업체로 창원에 신공장 설립을 추진하던 이코리아산업을 낙점했다. ICIS는 LG전자 연구진이 개발한 스마트 기술과 이코리아산업의 숙련공들이 30여년간 쌓은 사출 노하우가 더해진 결과물이다.

높아진 사출 생산력을 바탕으로 서 사이언스는 LG전자로부터 건조기, 스타일러, 환기덕트 등의 조립 생산을 이전 받으며 사업 영역을 본격 확장하고 있다. 사이언스가 창원 공장에서 새롭게 창출한 고용만 300명, 매출액은 연 2000억원에 육박한다.

LG전자와 사이언스의 사례는 대기업의 선택이 협력사의 성장은 물론 대기업 자신의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지며 지역 경제까지 부흥시키고 있는 사례다. LG전자가 2019년부터 현재까지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지원한 협력사만 200여곳에 달한다. 인건비가 싼 국가로 생산 공정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50여년간 구축한 창원의 가전 밸류체인을 ‘AI자율제조’를 통해 혁신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정태영 사이언스 대표는 “사출은 전형적인 3D산업으로 인력 확보이 어렵도 성장도 정체돼있었다”며 “LG전자의 기술 전수와 지원이 없었다면 창원에 신공장을 세우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사 불량률 0.01% 이하로 낮춘 ‘창원의 기적’

같은 날 방문한 경남 창원 LG스마트파크1 통합생산동에선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보던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작업장 바닥에 줄을 따라 이어진 QR코드를 길 삼아 최대 600kg을 싣을 수 있는 5세대 이동통신(5G) 기반 물류로봇(AGV)들이 부품을 싣고 숨가쁘게 움직였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고공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부품들이 옮겨져 로봇 팔을 통해 생산 라인 작업자의 손 앞으로 옮겨졌다. 한 라인에서 무려 58종의 모델을 생산하는 혼류 생산이 가능한, 세계경제포럼(WEF)으로부터 전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인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LG스마트파크의 모습이다.
○해외 이전보다 국내 밸류체인 강화 선택

LG전자가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을 생산하는 창원1사업장에 2017년부터 총 8000억원을 투자해 탈바꿈시킨 LG스마트파크는 국내 가전업계 제조혁신의 상징이다. 창원이 가전 산업의 ‘메카’가 된 것은 LG가 창원에 공장을 설립한 1976년부터다. 창원 공장을 중심으로 수백여개 협력사들이 창원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만 한 해 200만대의 제품이 만들어져 수출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런 창원의 가전 산업에도 2010년대 중반 위기가 찾아왔다. 가전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등 첨단 기술이 접목되는 가운데 고객의 수요가 다양해지며 LG전자가 생산해야 하는 모델의 수도 70%가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공장 시스템으론 감당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 조립 공정의 혁신 없인 인건비 부담에 국내에서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린 것.

많은 기업들이 같은 도전에 직면해 인건비가 싼 해외로 기업을 이전했지만 LG는 정 반대의 선택을 했다. 2021년 1사업장을 스마트파크1으로 탈바꿈시킨데 이어 올해 완공을 목표로 오븐, 식기세척기 등 주방 가전을 생산하는 2사업장의 스마트공장화도 진행하고 있다. 이 작업까지 마무리되면 창원 스마트파크의 연간 생산량은 300만대로 늘어난다. 2017년엔 공장 부지 내에 20층 높이의 ‘창원 R&D센터’를 설립하고 전국 사업장에 흩어져 있던 가전 R&D인력 1500여명을 한 곳에 모았다. 인재 유치를 이유로 주요 기업 상당수가 R&D센터를 수도권으로 옮기는 가운데 이뤄진 시도다.

LG전자 관계자는 “스마트파크 구축을 통해 물류 면적은 30% 라인 무작업율은 96%를 줄였고, 생산성이 17% 개선됐다”며 “생산과 R&D가 결합돼 제조공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이 곧바로 제품과 공정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정부, LG식 모델 반영 전국에 스마트제조 확산

이 같은 강점을 대기업 안에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1~N차 협력사’로 이어지는 피라미드형 생산 밸류체인 전체를 스마트화한 것이 LG전자의 혁신이 주목 받는 점이다. LG전자는 이른바 ‘선단형 스마트화’ 모델을 채택했다. 자금력과 인력이 부족한 하청업체에 말로만 ‘스마트화하라, 탈석탄화하라’고 해서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총 200여개 협력사에 LG전자가 보유한 스마트팩토리 구축 노하우·방법론을 제공하고 생산성, 품질 컨설팅, 인력 육성에 자금을 지원했다. 2027년까지 추가로 250여개 협력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LG전자와의 핵심 기술 공동 개발을 바탕으로 창원에 신공장을 설립, 2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 중인 사이언스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LG의 실험에 힘입어 탈원전, 조선업 불황 등으로 2010년대 경기 침체에 빠졌던 창원 경제는 반등세를 타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21년 50조원이던 창원 내 산단 생산액은 2023년 63조8000억원으로 2년 만에 28% 증가했다. 2021년 3.9%였던 실업률도 2023년 2.3%로 하락했다.

정부도 LG식 성장 모델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LG전자를 비롯해 현대차, 포스코 등 119개 기업과 손 잡고 전국 제조 현장을 스마트화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AI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민·관 합쳐 3조7000억원이 투자되는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협력사 등 하부 밸류체인까지 혁신의 확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청인 대기업이 움직이면 우리 제조업과 지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창원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