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가장 멋진 말을 듣고 가장 비극적 선택을 한 아버지

입력 2025-01-12 17:21   수정 2025-01-13 00:36

“그 아이가 날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그토록 싸워댔던 큰아들이 실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울컥한다. 아버지는 소싯적의 외도를 들켜버린 뒤 큰아들과 메우기 힘든 틈이 생겼다고 느꼈다. 하지만 17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아들의 본심을 알게 됐다. 감격한 아버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회사에서 해고당해 가정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사망보험금을 타겠다고 결심한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 결심을 위해 3시간 동안 쉼 없이 휘몰아치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개막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를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49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연극계 3대상인 퓰리처상, 토니상, 뉴욕 연극 비평가상을 모두 휩쓸었다.

30년 넘게 세일즈맨으로 미국 전역을 누빈 가장 윌리 로먼은 젊은 시절 능력 있는 영업 사원이었다. 큰아들 비프와 둘째 아들 해피에게 존경받는 아빠였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회사에서 입지는 좁아지고, 아이들과도 멀어졌다. 특히 비프와는 눈만 마주쳐도 말다툼이 날 정도다. 전도유망한 럭비 선수 비프는 고등학교 시절 대학 3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지금은 변변한 직업도 없이 서른네 살이 됐다. 연극은 아버지 윌리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과거와 비극적인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윌리 역에는 박근형(사진)과 손병호가 더블 캐스팅됐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르는 박근형은 객석의 공기 흐름까지 바꾸는 압도적 존재감과 열연으로 극을 이끈다.

자존감을 잃은 윌리가 환각 속에서 알래스카에서 큰 성공을 거둔 형에게 매달리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순간에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비는 모습은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아들과 오랜 우정을 쌓아온 친구 찰리와 갈등을 겪는 순간에는 폭발적 에너지를 보여준다. 아들을 위해 가장 비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결딴내는 순간은 ‘경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충돌하고, 상처받고, 후회하고, 다시 응원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삶의 애환과 빡빡한 현실, 그리고 그것들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그린다. 성공과 가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격돌이라는 보편적 키워드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극의 배경과 80여 년 차이가 나는 현실에 대입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공연은 오는 3월 3일까지 이어진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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