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신(神)들의 경연’.
지난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발레의 별빛, 글로벌 발레스타 초청 갈라 공연(발레의 별빛)’은 올림포스산에서 벌어지는 신들의 겨루기를 연상케 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입단을 앞둔 전민철과 파리오페라발레단 박세은,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최영규 등 ‘K발레 스타’가 절정의 실력을 뽐낸 이번 공연은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66)를 위한 자리다. 오는 2월 정년 퇴임을 앞둔 김 교수를 위해 한예종 출신 발레리노와 발레리나 20여 명이 고국 땅을 밟았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홍향기는 한국 창작 발레 ‘코리아 이모션 정(情), 미리내길’의 한 자락으로 사별한 남편을 그리는 마음을 발레와 한국적 춤사위에 절절히 녹여냈다. 바닥에 쓰러져 떠나가는 남편의 영혼을 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박수가 뒤늦게 이어졌다. 관객들이 감정을 추스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프로 무대에서 만나 춤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파트너도 많았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퍼스트 솔리스트 전준혁과 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채지영은 차이콥스키의 고전 발레 ‘잠자는 숲속의 공주(미녀)’ 속 결혼식 그랑 파드되(2인무)를 보여줬다. 전준혁은 로열발레단에서 갈고닦은 귀족적이며 기품 있는 춤사위가 두드러졌고 채지영 역시 전준혁과 처음 호흡을 맞춘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깨끗한 동작을 이어갔다.
폴란드국립발레단의 정재은과 아메리카발레시어터(ABT)의 한성우는 ‘지젤’의 2막 2인무를 보여줬다. 한성우가 지난해 11월 방한해 ABT 무용수와 보여준 지젤 2인무와는 달랐다. 폴란드를 거점으로 유럽 곳곳에서 활약 중인 정재은과 미국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한성우의 독특한 조화가 수십 번 본 ‘지젤’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힌 듯 신선했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독특하고 센세이셔널한 작품은 ‘블레이크 웍스3, 부저드&캐스트렐’이었다. 보스턴발레단의 채지영 이선우 이상민 3명이 공연의 성대한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전설적 발레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75)의 작품이다. 포사이스가 보스턴발레단의 상임 안무가였을 때 만들었다. 채지영이 이번 갈라를 위해 포사이스를 설득해 춤출 수 있는 권한을 받아와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발레 연습실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바가 설치된 가운데 무용수 세 명이 박자를 쪼개 가며 쫀득하게 동작을 주고받았다. 세 사람은 척추를 매우 부드럽게 움직이면서도 팔과 다리는 절도 있게 제어하는 등 초절기교적 테크닉을 보여줬다. 클래식 발레뿐만 아니라 현대 발레에서도 인정받는 한국인 무용수들의 기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들어가는 전민철과 미국 휴스턴발레단 입단을 앞둔 이윤주는 ‘왓 어바웃 클래시컬 무브먼트’ 가운데 ‘꿈’을 연기했다. 별빛이 내리는 배경을 뒤로하고 사랑에 설레는 젊은 두 남녀를 풋풋하고 싱그럽게 표현했다. 두 사람은 다른 갈라 무대에서도 이 작품으로 여러 번 파트너로 섰다. 이번 무대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입맞춤 안무가 추가됐는데, 세계 무대를 누비는 선배들처럼 성장해나갈 슈퍼 루키들의 앞날을 축복하듯 커다란 박수가 터졌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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