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사고의 원인을 밝힐 핵심 장치로 꼽히는 블랙박스에 ‘마지막 4분’이 저장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체의 전원 셧다운(공급 중단)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추락 직전 기록의 부재로 진상 규명에 난관이 예상된다. 비상 상황에서 블랙박스를 정상 작동시키기 위한 보조배터리 설치 의무가 사고 항공기엔 적용되지 않은 점도 논란을 키우는 대목이다.
FDR에는 비행기의 고도, 속도, 방향, 기상, 랜딩기어(착륙 시설) 작동 여부, 엔진 추력 등 200여 가지 데이터가 담긴다. 사고 직전 25시간 동안의 정보가 저장된다. CVR을 통해선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 관제탑 교신 내용 등 2시간 분량의 음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흔히 ‘블랙박스’로 불리는 FDR과 CVR은 1100도 고온에서 1시간 이상 버티고, 3400G(중력가속도)의 충격도 견딜 수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4분간 블랙박스의 작동이 멈춘 건 기체 내 모든 전원이 셧다운됐기 때문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력 엔진 2개와 보조동력장치(APU) 모두에 이상이 생기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사고 항공기엔 블랙박스의 비상용 배터리 역할을 할 보조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상 CVR 보조배터리 설치 의무는 2018년부터 시행돼 그 이전에 제작된 이번 사고기엔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FDR과 관련해선 보조장치 구비 관련 별도 규정이 없다는 설명이다. 항공업계 일각에선 셧다운이 일어나 전자기기 작동이 멈추면 FDR에서 전자적 정보의 생산 자체가 안 되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블랙박스는 제 기능을 해야 하는 게 상식인 만큼 규정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참에 오래된 항공기에도 CVR 보조배터리 설치 의무를 부여하고, FDR의 비상동력원 마련과 관련해서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4분의 기록 중단으로 사고 원인 조사가 미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사고조사위 관계자는 “4분간 기록이 저장되지 않은 건 안타깝다”면서도 “그 앞의 데이터는 살아있고 공항 CCTV와 관제교신 기록, 엔진 수거 후 점검 등을 종합적으로 하고 있어 (4분간 블랙박스 누락으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고 조사를 할 땐 여러 정보와 증거를 대조하며 맞춰보는 작업이 필수”라며 “다행히 관제탑에서 수거한 조종실과 관제실 간 교신 기록에선 마지막 4분 이후 내용도 일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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