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경기…한은, 금리인하 골든타임 놓쳤나

입력 2025-01-12 18:02   수정 2025-01-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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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기관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잠재성장률(2%)을 크게 밑도는 1%대 중반까지 잇따라 하향 조정하면서 ‘R(recession·침체)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수출 증가율 둔화와 내수 침체에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둔화한 데는 한국은행의 잘못된 경기 판단에 따른 기준금리 인하 실기(失期)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내수 부양을 위해 한은이 물가 상승률이 둔화한 작년 7~8월에 금리를 미리 낮췄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한은이 작년 4분기 뒤늦게 금리를 두 차례 연속 내린 것이 최근 비상사태에서 ‘금리 인하 카드’를 또 쓰는 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화 약세에 금리인하 고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달 16일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한다. 연 3.0%인 금리를 추가 인하할지에 대해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장기 침체에 빠진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한은이 이달에 금리를 낮추면 작년 10월·11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 인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문제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1460~1470원대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원화 약세를 가중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기축통화국도 아닌 한국의 금리 인하가 더 높은 금리를 찾는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을 초래해 환율을 더 밀어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도 금리 인하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보편관세가 현실화하면 수입 물가를 자극해 미국 국내 물가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지난 8일 공개된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Fed) 위원들은 신정부 출범 이후 물가 상승을 우려하며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시점”이라고 일제히 지적했다. 이 와중에 한은이 연 3.0%인 기준금리를 낮춘다면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커져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지난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으면 최근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운신의 폭이 확대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당초 작년 5월부터 한은이 금리를 점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며 “작년 8월에도 충분히 금리를 인하할 수 있었는데 동결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늦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뒤늦게 방향 바꾼 한은
한은은 2023년 2월부터 작년 8월까지 13회 연속 연 3.5%로 금리를 동결했다가 10월과 11월 두 달 연속 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은 작년 상반기 동결 과정에서 내수 경기 회복보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기준금리 인하 실기론을 제기하는 경제학자들도 작년 상반기 인하는 시기상조였다고 본다. 작년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하는 등 여전히 불안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년 7월과 8월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6월 2.4%까지 떨어져 물가 관리 목표치(2%)에 근접했다. 특히 작년 6월 백화점 카드 승인액과 대형마트 매출이 일제히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면서 내수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3% ‘깜짝 성장’한 데 따른 기저효과에 내수 부진까지 겹쳐 2분기에 역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도 내수 경기를 부양할 유일한 카드는 금리 인하라고 봤다.

하지만 한은은 작년 7월 11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했다. 당시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가 둔화한 만큼 인하 시점을 고민할 때라고 밝히기는 했다. 다만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 등 위험 요인이 많은 것을 고려하면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는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한 달 후인 8월 22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도 금통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했다. 2분기 GDP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0.2% 뒷걸음쳤지만 한은 입장은 완강했다. 내수 경기 회복보다 집값 안정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은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례적으로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일제히 논평을 냈다. 2주 후 공개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관리치인 2.0%까지 하락하자 한은이 금리를 진작에 낮췄어야 했다는 금리 인하 실기론이 본격 제기됐다.

한은은 작년 10월 11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38개월 만에 금리를 인하하면서 피벗(통화정책 전환)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인하”라고 했다. 금융 안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한 것이다. 한은은 2분기 GDP가 역성장하긴 했지만 내수가 살아나면서 3분기부터는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봤다. 한은이 예상한 3분기 GDP 증가율은 0.5%(전 분기 대비)였다. 예상은 빗나갔다.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열린 지 2주 후인 10월 24일 한은은 3분기 성장률이 0.1%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속도 조절을 시사했던 한은은 다음 달인 11월 28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깜짝 인하’했다. 이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2025년 성장률은 2.1%에서 1.9%로 내렸다. 이 총재는 “구조적 수출 부진과 트럼프 신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성장 하방 압력이 커졌다”며 “금리를 추가 인하해 성장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출 증가세 둔화와 내수 침체를 안이하게 바라봤다가 뒤늦게 입장을 바꾼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7월 13.9%에서 9월 7.1%로 한 자릿수로 하락한 데 이어 11월엔 1.4%까지 추락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지연된 상황에서 올해도 늦어지면 과도한 내수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달에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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