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는 헌법과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공화국의 위기’가 본질이다. 위헌적인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오직 직무 정지를 노린 거대 야당의 무제한 탄핵, 극히 예외적이어야 할 특검의 일상화,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 영장 청구와 판사 쇼핑 논란, “총을 맞더라도 대통령을 체포하라”고 호통치며 수사를 지휘하는 국회의원 모습은 대한민국이 법치 국가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위험 신호다.
가장 위험한 것은 통제되지 않는 경찰 권력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스템을 갖춘 프랑스와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경찰을 두 가지 방식으로 통제한다. 치안 등 행정경찰에 관한 사항은 내무부가 경찰의 인사, 징계, 예산, 정책 권한을 갖고 일선 경찰은 집행 기능만 지닌다. 수사와 관련된 사법경찰에 관한 사항은 검사가 사법경찰을 지휘 통제한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검사가 사법경찰을 수사 지휘하도록 한 이유는 경찰의 수장인 행정경찰이 인사권을 도구로 사법경찰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 대신 검찰은 자체 수사 기능이 없다. 독일에서는 이를 “검찰은 손발 없는 머리, 경찰은 머리 없는 손발”이라고 부른다. 검찰과 경찰을 묶어 어느 수사기관도 폭주할 수 없도록 제어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14만 명의 우리 경찰은 무장 병력까지 갖추고 있지만 행안부 장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검사의 수사 지휘도 받지 않는다. 경찰청장이 전국 경찰에 대한 인사, 예산, 징계, 정책, 법령의 제·개정 권한을 모두 가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대통령과 내각이 국무회의를 거쳐 결정한 치안 정책을 경찰에게 지휘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윤석열 정권 초기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려 했지만, 경찰의 격렬한 반발로 ‘무늬만 경찰국’으로 끝났다. 경찰은 경찰청 정보국을 중심으로 전국에 방대한 정보 조직도 운영한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권과 정보가 결합하면 대통령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 권력이 된다. 체포 영장 집행을 저지했다는 이유로 경호처장을 바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해 결국 사직하게 만든 것처럼 형사 입건 여부, 수사 여부가 오직 경찰의 재량과 자비에 달려 있다. 부산경찰청장 출신의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과 국가수사본부 간에 “전화기에 불이 나도록” 바쁘게 메신저 역할을 했다고 스스로 고백한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경(政警)유착’의 음습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카이사르는 “악행의 모든 사례는 본래 선한 출발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강력하고 근대적인 국가는 법치주의나 책임정부적 조건에 구애받지 않을 때 보다 완벽한 폭정 체제가 될 수 있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경고한다. 인간의 선의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누가 와도 흔들 수 없는 견제와 균형의 제도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보장한다. 시장경제와 경제적 풍요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재산권 보장, 법치, 정치 질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가난한 나라는 자원이 없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효과적인 정치제도가 없어서 가난한 것이다.
정치집단 간 타협 부재와 적대적 접근 방식에 따른 양극화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을 지배했고,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억제할 사법기관의 역량 부재가 나치 독일로 가는 지옥문을 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자유와 국가의 역량은 국가와 사회 사이 힘의 균형에 달려 있다. 우리는 번영의 빈틈을 메울 것인지, 무시무시한 힘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사회를 분열시키도록 내버려둘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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