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발언 그대로 해석 말라…'작은 당근' 주고 실리 찾아야"

입력 2025-01-12 17:47   수정 2025-01-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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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사진)가 올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하를 멈출 수 있다고 전망했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에 대해 “성장률이 여전히 높고, 인플레이션은 고착 상태”라며 “소프트 랜딩(연착륙) 다음으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가 노 랜딩(무착륙)”이라고 진단했다. 경기가 완만히 둔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이 Fed 목표치인 2%를 향해 가는 대신 경기가 둔화하지 않아 고물가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는 “Fed가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인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Fed는 지난해 9월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서 연 5.25~5.5%이던 기준금리를 같은 해 12월까지 연 4.25~4.5%로 1%포인트 낮췄다. 올해는 점도표를 통해 추가 2회(0.5%포인트) 금리 인하를 예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인플레이션과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로 글로벌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5%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루비니 교수는 “국채 금리가 더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미국 주식시장 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트럼프는 당근과 유인책 조금(a few carrots and bones)만 줘도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며 그의 관세정책 등에 보복 대응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역대급 호황' 맞은 美…경제 견고하지만 인플레 위험
재정적자에 관세전쟁 현실화 땐 경기둔화 없는 '노 랜딩' 가능성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에 보복 대응하지 말 것’ ‘한국의 지정학적 필요성을 강조하며 협상 테이블에 미국을 끌어들일 것’.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한국의 정책 대응과 관련해 가장 강조한 두 가지다. 루비니 교수는 트럼프 2기 정부에 대응한 보복 조치는 외교적 긴장을 극대화해 실리를 취할 수 없다고 봤다. 대신 한국과의 동맹 강화가 중국의 아시아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조언했다.

▷트럼프의 정책을 예측하기 힘듭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우려하는 것들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는 일본, 한국, 대만 같은 동맹국이 국방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미국이 제공하는 방위 서비스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미국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이 많으므로 한국이 러시아 같은 불안정한 공급원보다 저렴한 미국산 LNG를 더 많이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이런 전략에 협력한다면 미국은 긍정적으로 반응할 겁니다.”

▷보복 관세 주장도 나옵니다.

“미국이 관세로 위협할 때 ‘우리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대응해선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친구이자 동맹이며, 경제적·정치적·지정학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합니다.”

▷어떻게 협상해야 할까요.

“트럼프 당선인은 협상에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양보하면 “위대한 거래, 최고의 거래를 성사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승리로 간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은 여기서 몇 가지 당근과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양보를 얻었다고 선언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해야 할 양보는 비교적 적을 수 있습니다.”

▷한국엔 어떤 카드가 있습니까.

“미국에도 한국은 중요한 국가입니다. 미국으로선 한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시아가 중국에 점령당하지 않도록 하는 핵심적 방법이 될 겁니다. 이런 상호 중요성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때로는 과장되거나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트럼프 관세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경제 성장을 저해합니다. 비용이 낮은 지역에서 높은 지역으로 (노동력 같은) 생산 자원이 이동하는 비효율을 낳기 때문입니다.”

▷협상 도구로 쓴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말이 맞는다면 (관세 범위와 세율이 줄어) 미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작아질 겁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일부 참모는 무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입니다. 결국 대통령의 본능이 결정적 역할을 할 거예요.”

▷환율전쟁 이야기도 나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첫 임기 동안 일부 중국산 제품에 최대 20% 관세를 부과했을 때 중국은 자국 통화를 관세율에 근접한 수준으로 절하했습니다. 2018~2019년 당시 관세 부과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은 주요 이유입니다.”

▷달러 강세가 예상되네요.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관세에 따른 미국 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달러 강세를 허용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결론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겁니다. 트럼프 정부는 무엇을 희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미국 경제는 왜 강합니까.

“인공지능(AI) 혁명은 자본 지출 붐을 일으켰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한 공급 충격이 해소되면서 경제 성장도 회복됐습니다. 미국 재정정책, 특히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고금리를 견디는군요.

“그렇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세 가지 시나리오는 성장률이 완만히 둔화하는 소프트 랜딩(연착륙), 경기 둔화 없이 기존 성장세를 유지하는 노 랜딩, 경기가 침체하는 하드 랜딩(경착륙)입니다. 제 생각엔 소프트 랜딩을 할 것 같습니다. 소프트 랜딩을 안 한다면 하드 랜딩보다 노 랜딩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닥터 둠’답지 않게 낙관적이십니다.

“저는 항상 제가 닥터 둠이 아니라 닥터 리얼리스트(현실주의자)라고 말합니다.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펼칠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겁니다.”

▷미국 통화정책은 어떻게 될까요.

“미국 경제 성장률은 여전히 높고, 인플레이션은 고착 상태입니다. 여기에 관세, 재정적자 등의 문제까지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한 번만 인하할 수도, 인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인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보통 정치적 불확실성은 정책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이는 기업과 소비자 심리를 약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치적 위기는 한국이 강한 민주주의 국가임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훌륭한 집행력, 좋은 거버넌스, 탄탄한 시민사회, 법치주의, 독립적 언론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국은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합니다.

“물론 한국은 성장 둔화 등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가 여전히 상호 연결돼 있고, 작은 개방 경제인 한국은 세계 무역, 특히 서비스 및 디지털 서비스 무역에서 이점을 누릴 겁니다. 한국은 강력한 제조업 기반, 반도체산업의 우위, 자동차산업 같은 탄탄한 제조업 그리고 우수한 인적 자본을 갖춰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예견…월가의 비관론 선지자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탈리아 밀라노 보코니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턴경영대학원에 합류하기 전에는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에서 국제경제 담당 선임경제학자로, 이후 미국 재무부 국제 담당 차관보의 선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06년 국제통화기금(IMF) 연설에서 신용 및 주택시장 거품으로 인해 경기 침체가 닥칠 것을 경고했다. 그의 예측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품이 터지자 주목받았다. 이로 인해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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