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AI의 일자리 습격

입력 2025-01-12 17:53   수정 2025-01-13 00:22

지난해 10월 미국 동부항만은 47년 만에 동시 파업에 들어갔다. 임금 인상폭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 때문이었다. 거의 반세기 만의 일인지라 장기화 우려가 있었지만 대선을 앞둔 백악관의 중재로 파업은 3일 만에 싱겁게 끝났다. 하지만 당시엔 임금 합의만 이뤄졌고 단체협상은 이달 15일을 기한으로 계속됐다. 항만 노사는 최근 단협도 극적으로 타결했다. 새 협약의 핵심은 인공지능(AI) 확대에 대응하는 ‘고용 안정 장치’ 도입이다.

미국 항만들은 현재 부두 노동자 한 명이 여러 대의 반자율 크레인을 동시에 관리하고 있지만, 이번 합의로 앞으로는 새로운 장비 한 대를 도입할 때마다 노동자 한 명을 고용해야 한다. 노조가 AI로부터 일자리를 지켜낸 셈이다. 하지만 증기자동차를 견제하려는 마부들의 요구로 영국에서 1865년 제정된 적기조례법(붉은 깃발법)을 연상하게 한다.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달리며 마차에 자동차 접근을 경고하는 기수를 고용해야 했던 160년 전이나 AI로 운영되는 장비마다 사람을 써야 하는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항만노조의 협상은 AI를 둘러싼 노사 간 힘겨루기의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과거 산업혁명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AI혁명도 그럴 수 있느냐는 점이다. AI가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 업무를 먼저 대체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지만, AI와 로봇의 결합이 본격화한다면 어떤 직종도 안심할 수 없을 듯하다. 제조업, 서비스업, 물류·운수업 등 국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을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궁극적으로 AI가 모든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며 “미래의 과제는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있다고 말한다. 일은 AI에 시키고 소득은 인간이 차지하는 꿈 같은 세계이자 완전한 ‘노동의 종말’이다. 그런 미래가 온다면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르겠다.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지 않는 인간에게 삶의 의미가 쉽게 찾아질까.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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