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탄핵 정국이 불러올 확장재정의 위험성을 꼬집은 피치의 진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러미 주크 피치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교착 상태가 지속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보다 커지면 재정 지출을 늘리라는 압력이 증가할 수 있다”며 “이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확대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재정적자로 인해 정부부채가 계속 증가하면 중기적으로 신용등급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인터뷰한 S&P와 무디스가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신용등급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일반론을 폈다면 피치는 구체적으로 탄핵 정국의 국가 재정 문제를 집중 제기한 것이다. 가뜩이나 저출생, 고령화에 따라 복지지출이 느는 한국에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추진되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한국 정부가 고령화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힘들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로 인해 2.1%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점진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행히 아직까진 피치를 비롯한 글로벌 신평사들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와 신용등급을 낮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피치의 경고대로 정치권이 경기 침체 극복 카드로 대규모 추경 카드를 꺼내 들면 재정건전성 악화로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이 20조원 이상의 역대급 추경을 즉시 편성하라고 압박하자 정부도 ‘상반기 추경 반대’에서 ‘필요시 검토’ 쪽으로 선회했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탄핵 정국 수습이 요원한 가운데 무분별한 추경까지 추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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