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주크 피치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담당 이사는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힘을 얻고 있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에 대해 “정치적 교착 상태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예상보다 커지면 (내수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라는 요구가 증가할 수 있다”며 “이는 한국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에 더 큰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재정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한 골든타임”이라며 적자 국채 발행을 통해 최소 20조원, 최대 30조원 규모 추경 편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추가 경기 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며 추경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주크 이사는 “최근 통과된 (감액) 예산에 따라 재정적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지만 (경기) 리스크는 하방 위험으로 기울고 있다”며 “지속적인 재정적자로 정부 부채가 증가세를 보인다면 중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에 하향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한국 정치 상황이 국가 신용등급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정치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 정쟁이 정책 결정의 효율성과 재정 관리 능력을 약화시키면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답했다.
루이스 쿠이즈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아시아태평양 수석이코노미스트와 아누슈카 샤 무디스 신용평가부문 부사장도 지난 9일 “정치적 위기가 지속되면 한국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크 이사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0%로 전망하는데,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한 점을 감안하면 하방 위험이 있다”며 “높은 수준의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치는 한국에 네 번째로 높은 ‘AA-’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등급 전망은 ‘안정적’이다.
주크 이사는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고령화와 미진한 구조 개혁 등을 꼽았다.
그는 “급속한 고령화는 한국 경제와 재정 전망에 또 다른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연금과 건강 관련 지출이 증가하면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부채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국 경제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인구구조 변화 등 점점 더 커지는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정치적 교착 상태가 정책 집행력을 저해하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재 약 2.1%인 한국 잠재성장률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며 점진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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