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콘셉트의 카페인 줄 알고 왔는데 진짜 조선소였네요.”
지난 6일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에서 만난 관광객 캐롤리나 애보니는 “이곳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하루 4만 명이 일하는 세계 최고 조선소 중 하나였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배 대신 큼지막한 카페와 어반아웃핏 같은 의류 스타트업들이 자리잡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필리조선소는 미국 조선업 쇠락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이런 낡은 조선소를 지난해 한화오션이 1억달러를 주고 인수했을 때 “꿍꿍이가 뭐냐”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2.0 시대가 열리면서 한화의 베팅은 ‘잭팟’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조선업 재건을 선언한 만큼 필리조선소에 상당한 일감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돼서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해상운송법(존스액트)이 부메랑이 됐다. 미국 연안에서 운항하는 선박은 ‘메이드 인 USA’여야 하고, 선원도 75% 이상 미국인으로 고용해야 하는 규제에 하나둘 조선사업을 버리기 시작했다. 가격 경쟁력과 노동 숙련성이 일본 등에 밀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1983년부터 2013년까지 약 300개 조선소가 사라지면서 현재 미국에서 대형 상업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3개로 줄어들었다.
조 바이든 정부는 소규모 조선소를 보유한 12개 주에 각각 보조금 875만달러를 지원하고 국영 조선소 현대화를 위해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를 투자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한화오션은 한국의 전문 인력 수십 명을 필리조선소에 파견해 ‘일대일 과외’도 하고 있다. 필리조선소에서 일하는 현지 직원 500여 명 가운데 3년 이상 선박 건조 경험이 있는 숙련공이 70여 명에 불과해서다. 비싼 건조 비용은 풀어야 할 숙제다. 인건비가 워낙 비싼 데다 기초 기자재를 멕시코 등지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3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은 대당 3억달러(약 4350억원)에 달한다. 1500억원 이하로 건조할 수 있는 한국의 세 배 수준이다.
한화오션은 미국 내 하도급업체가 줄줄이 도산한 탓에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블록을 만들어 미국에서 조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부품 해외 조달 금액이 선박 가격의 25%가 넘으면 ‘바이 아메리칸 액트’ 정책에 걸려 높은 관세를 물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조선업 재건을 위해 일부 항목을 완화해줄 수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은 있다”며 “필리조선소가 한화오션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라델피아=오현우/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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