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찾은 대만 타이페이의 메트로폴리탄 프리미어 호텔. 이곳 1층 로비에는 입구부터 엘리베이터 앞까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날 호텔 10~13층에서 개막한 호텔 아트페어 ‘원 아트 타이페이’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이었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은 20~30대. 이날 만난 대만의 30대 여성 관람객은 “대만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게 흔한 일이다”며 “오늘은 결혼식을 앞둔 친구에게 선물할 그림을 사러 왔다”고 했다.
올해 아트페어에 참가한 61개 갤러리 중 해외에서 온 비(非) 대만 갤러리는 절반 가량. 그 중 한국 갤러리 수는 열 곳에 달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신준원 조형아트서울 대표는 “대만 컬렉터들은 작품을 많이 구입하는 데다 한국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본 대만 미술시장의 특징과 최근의 분위기를 정리했다.
“대만, 젊고 성장하는 시장”
호텔 아트페어란 말 그대로 호텔에서 열리는 미술 장터다. 컨벤션센터 등지에 가벽을 설치한 뒤 작품을 거는 일반적인 아트페어와 달리, 호텔 아트페어는 몇 개 층의 객실을 통째로 빌려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대작을 전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출품작은 소품 위주다. 하지만 작품이 실제 집이나 사무실에 걸렸을 때의 느낌을 알 수 있는 데다 특유의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있어 매니아층이 많다. 특히 일본과 대만에서는 이런 아트페어가 자주 열린다. 이번에 열린 원아트타이페이 아트페어는 아시아권 호텔 아트페어 중 가장 규모가 큰 편이다.
‘넓고 얕은’ 대만 미술시장의 특성이 이번 행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출품작 대부분의 가격대가 수십~수백만원대였다. 대만의 한 갤러리 대표는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대졸 초임 연봉이 2000만원에 못 미치는 등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부족해 수천만원 이상의 고가 작품이 잘 팔리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미술을 좋아하고 미술품 수집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어 수십~수백만원대 중저가 작품 거래는 아시아권에서 가장 활발한 편”이라고 했다.
올해 행사가 열린 3일간 총 관람객은 1만5000명에 육박했다.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훨씬 넓은 공간에서 4일동안 열린 프리즈 서울의 관객이 7만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뜨거운 열기다. 릭 왕 원아트타이페이 공동대표는 “세계 미술시장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만은 타격이 덜한 편”이라며 “미술을 사랑하는 문화가 있는데다 젊고 호기심 많은 고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대만 미술시장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국 갤러리 속속 진출
오랫동안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화풍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일본풍’ 그림이었다. 대만 국민들 사이에서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쿠사마 야요이와 요시토모 나라 등 일본 작가들의 그림을 가장 많이 구입한 나라 중 하나가 대만일 정도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대만 컬렉터들의 미술 취향은 다양해지고 있다. 2010년대 초중반 대만 컬렉터들이 한국의 단색화 작품을 대거 구입하는 등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단적인 예다.
이번 행사에서도 한국 미술의 인기는 높았다. 청작아트는 이기라, 백종은 등 젊은 작가들의 조각을 비롯해 가져온 작품 중 절반 가량인 12점을 판매했다. 대만 가오슝에 있는 대형 갤러리 JP아트센터의 부스에 나온 비비 조(본명 조혜윤) 작가의 그림은 개막 당일에 대부분이 판매됐다.
국내를 벗어나 대만에서 활로를 찾고 자리잡는 한국 갤러리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엘갤러리의 이백 대표는 “6년 전부터 대만에 진출해 작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제는 단골 손님도 많이 생겼다”며 “지난해 열린 아트타이페이에서는 갖고 나온 작품을 전부 다 판매하는 등 갈수록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페이=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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