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펌에 없던 글로벌 로펌의 경험을 이식했습니다. 태평양 팀이 국제중재 시장을 업그레이드할 것입니다."
지난 9일 김우재·크리스 테일러 태평양 변호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평양은 최근 세계 3위 로펌인 앨런앤드오버리(A&O)에서 23년간 근무한 테일러 변호사를 영입했다. 국제중재와 국경 간 거래(크로스보더) 업무를 확장하겠다는 목표다.
테일러 변호사는 김 변호사와의 인연을 태평양 합류의 주요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11년 전 김 변호사를 중재 사건에서 상대한 적이 있다"며 "분쟁 상대방과는 대립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 변호사와는 협력이 수월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A&O 커리어를 마치고 싱가포르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는데, 새 로펌과 팀에서 일하는 것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태평양은 테일러 변호사 영입으로 해외 고객 확보는 물론 중재 역량 자체를 더욱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태평양 국제중재 업무를 총괄하는 김 변호사는 "테일러 변호사 수준의 경력을 갖춘 외국변호사가 한국 로펌에 합류한 전례가 없다"며 "태평양의 역량과 테일러 변호사의 경험을 결합해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 밝혔다.
테일러 변호사는 "국제 분쟁 해결에는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가령 조정 제도는 미국과 유럽에서 주요 협상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타 지역에서는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아 선택지로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조정은 조정인이 선임돼 분쟁 당사자의 협상을 돕는 제도로, 중재인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판정을 내리는 중재와 달리 당사자 간 합의를 목표로 한다.
김 변호사는 "같은 문화권 내에서는 분쟁 상황을 예측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국제적인 분쟁에서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응 방안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을 비롯한 다양한 법률 시장을 경험한 테일러 변호사의 경력은 귀중한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테일러 변호사는 한국 로펌의 국제 시장 경쟁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A&O에서 처리한 사건 중 태평양이 못할 사건은 없었다"며 "대외적인 인식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올해 태평양의 모토 중 하나가 '고객을 위한 실력'"이라며 "인도·뉴질랜드 등 다양한 법률 배경의 팀을 갖춘 것이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테일러 변호사는 "많은 글로벌 로펌들이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로펌 업무에서 시간은 곧 비용인데, 서류 검토 등 업무 시간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주니어 변호사들도 단순 업무가 아닌 법적 쟁점 파악 및 사건 분석 같은 본질적인 업무에 투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김 변호사는 "AI가 로펌 업무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일으키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비밀 유지 등 실무에서 활용하기에는 여전히 극복할 부분이 많다"고 분석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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