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제강지주의 A부서장은 지난해 1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부터 매일 미국 내 오일과 가스 시황을 파악하고 있다. 세아제강은 미국 텍사스에서 시추용 강관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석유시대로 회귀하겠다”고 한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을 보면 미국 내 시추용 강관 매출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추관은 송유관보다 가격이 20%가량 비싼 데다 소모품이라 교체 수요까지 노릴 수 있다”며 “정책에 따라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3일 미국 에너지 서비스기업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시추하는 장비 수는 연초(621개)보다 줄어든 589개로 집계됐다. 미국 시추 장비는 올 들어 580~620개 박스권에 갇혀 있다. 매주 채굴 장비를 집계하는 베이커휴즈리그카운트는 미국 석유·천연가스 생산 현황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다만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도와주던 바이든 정부 대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얘기는 달라질 전망이다. 트럼프 1기 당시 2017년 1월 665개이던 시추 장비가 2018년 924개로 50% 가까이 늘었다. 이듬해에도 1075개로 10% 이상 증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당시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 시추 확대) 슬로건을 강조했다. 석유뿐 아니라 셰일가스 등 효율이 좋은 화석 연료를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에 발맞춰 ‘석유 공룡’인 엑슨모빌은 하루 460만 배럴인 현재 석유 생산량을 2030년 17% 늘리겠다고 최근 밝혔다. 시추 장비가 늘어나면 관련 기자재 수요도 자연스레 증가한다. 시추·송유용 강관을 생산하는 세아제강은 국내 철강사 중 유일하게 현지에 강관 생산 거점(연 25만t)을 보유하고 있다. 시추관은 고온, 고압을 견뎌야 하는 만큼 안정성이 중요하다. 세아제강 관계자는 “한 번 사고가 나면 심각한 유출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용접 품질이 좋은 한국 제품에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기업인 롯데정밀화학도 의외의 수혜주다.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소재)인 헤셀로스(HEC)가 석유 시추에 쓰이기 때문이다.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땅을 뚫으면 자갈, 흙 등을 지상으로 뽑아 올려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게 헤셀로스다. 물에 점성을 부여해 젤리처럼 만들어야 이물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헤셀로스는 시추용 시멘트를 제조할 때도 첨가된다.
현재 미국 시장의 매출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꾸준히 현지 업체를 만나며 세일즈를 하고 있다. 목재, 면화에서 얻은 펄프를 원료로 하는 셀룰로오스 에테르계 제품인 헤셀로스는 제조에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제조하는 기업은 미국 애시랜드, 일본 신에쓰, 한국 롯데정밀화학 등 세 곳에 불과하다. 롯데정밀화학은 중동 석유 기업을 대상으로 헤셀로스를 주로 판매해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국 에너지 기업과 꾸준히 미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