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는 퇴근하고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맥주 한 캔 마시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 퇴근 후 곽 부장이 자주 이메일을 보낸다. 즉시 회신이 없으면 카톡을 보내고 답장이 없으면 전화를 걸어와 엄청난 스트레스로 퇴사까지 고민하고 있다.
과거에는 퇴근 시간이 늦어 퇴근 후 연락할 필요가 거의 없었지만 요즘엔 정시 퇴근이 많아 퇴근해서도 연락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퇴근 후 상사에게 연락받는 것을 사생활 침해로 생각해 업무용 휴대폰을 별도 구매하거나 휴대폰 한 대로 전화번호 두 개를 이용하는 듀얼 넘버 서비스로 업무용 번호를 따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 ‘카톡금지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최근 정부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 보장 방안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입법화해 시행 중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관한 해외 입법례를 살펴보고, 아직 입법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들여다본다.
프랑스는 2017년 세계 최초로 노동법전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규정했다. 50인 이상 기업은 노동조합과 합의해 근로자에게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 알림 등을 거부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실현 방법으로는 근로시간 외 메시지 차단, 디지털 기기 차단 시간 명시, 연결되지 않을 권리 행사를 이유로 한 해고 금지, 메일 온 홀리데이 프로그램(휴가 중 근로자에게 보낸 이메일은 자동 삭제되고 근무 중인 근로자 이메일로 전달) 시행, 이메일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언급하는 메시지 추가 등이 있다. 프랑스는 연례협상(Mandatory Annual Negotiation)에서 연결차단권을 교섭할 의무를 부여하지만 사용자가 합의할 의무는 없다. 단체협약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사협의회에서 그 내용을 내부 규정으로 설정해야 한다.
독일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입법으로 규율하지 않고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 등을 활용한 자율규제 방식으로 보장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개별 기업의 단체협약이나 사업장 협약에 들어가 있다.
2023년 독일 연방노동법원은 근로자가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형성하고 추구할 가능성을 현저히 침해할 정도로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근로자에게 휴식시간에도 문자메시지 등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봤다. 아주 짧고 단순한 사용자 지시를 퇴근 이후 확인하는 것은 근로계약의 부수적 의무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2024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퇴근하거나 휴일 등을 맞아 근무하지 않는 직원에게 연락한 고용주에게 과태료(1회당 최소 100달러)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다만 단체교섭 또는 긴급한 상황과 관련한 사안이거나 일정 조정을 위해 연락한 경우는 법 적용의 예외로 뒀다.
호주에선 2024년 8월 26일부터 15인 이상 사업장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공정노동법이 시행됐다(15인 미만 사업장은 2025년 8월 26일 시행). 근로자는 근무시간 외 시간에 그 거절이 불합리하지 않는 한 사용자 연락의 확인·읽기·답변을 거부할 수 있고, 사용자는 이를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 없다. 다만 업무상 필요가 있을 때는 예외를 인정한다(연소득이 일정 금액 이상인 임원진은 적용 예외). 한편 제3자가 근로자에게 근로 외 시간에 연결을 시도하는 것을 막을 책임도 사용자에게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법률을 위반하면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수년 전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입법화하거나 취업규칙 등으로 규율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카톡금지법 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입법안도 올라가 있어 머지않아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7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에서 사용자가 근로시간이 아닌 때 전화, 전자문서, SNS 등 통신수단 등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하는 등 근로자 휴식권을 침해하는 것을 금지했고, 근로시간 외 업무 지시에 따른 근로를 근로시간으로 간주하는 것을 명시화했다. 다만 사업 특성 또는 급박한 경영상 사유 등을 고려해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예외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입법화되거나 시행되지 않았으므로 업무 시간 외에 연락하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까. 직장 상사가 근무시간 외에 지나치게 자주 근로자에게 연락하고 곧바로 회신이 없다는 이유로 전화할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징계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업무 시간 후 여러 건의 업무 지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봐 징계한 것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중노위 2024. 3. 12.자 중앙2024부해64 판정). 또 업무상 긴급성이나 필요성 없이 근로시간 외에 잦은 연락을 할 경우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회사 역시 이 같은 행위를 방지하지 못하고 방치한 것에 사용자 책임이나 불법행위 책임을 질 수 있다. 그 밖에 근무시간 외 연락을 받고 일하게 되면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되고 주 52시간 위반에 따라 형사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입법화되지 않았더라도 현시점에서 인사 담당자는 예외적 상황(업무상 긴급성)이 아니라면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근로시간 외에 개별 연락하지 않도록 하고, 전체 공지를 통해 근로시간 외 연락이 올 경우 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아울러 단체 카톡방 등에서의 퇴근 후 불필요한 대화를 금지하고 이 같은 문화를 교육하는 등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충분한 업무 인수인계를 통해 휴가 중 연락 가능성을 차단하고 휴가자는 이메일 자동회신 기능으로 연락할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해 대체 근로자 이름과 연락처를 명시해 둔다. 업무상 필요에 따라 예외적으로 근로시간 외 연락이 가능한 경우를 최대한 구체화해 두고 분쟁을 예방할 필요도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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