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전기 무기화' 움직임…고민 깊어진 에너지 업계

입력 2025-01-13 16:13   수정 2025-01-13 18:50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고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기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기를 협상 지렛대로 두고 외교전을 벌이는 ‘전기 무기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르웨이, 전기 차단 추진
10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노르웨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노동당과 중앙당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송전 케이블로 유럽 국가 간 전력 거래 시장을 연결하는 현행 방식을 재협상하거나 아예 폐기하겠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의 석유·가스와 풍부한 물 자원을 토대로 수력 발전 전기 등을 생산하는 유럽 최대 에너지 공급국이다. 그런 노르웨이가 일종의 ‘전기 장벽’을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와 연결된 전력 인터커넥터(해저 케이블 등 국가 간 전력망) 스카게락을 폐기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다. 중앙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영국, 독일과의 전력 연결망(노르드링크, 노스시링크 등)도 계약 조건을 재협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최근 노르웨이에서 전기 요금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독일과 북해 등지에서 바람 세기가 약해지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이 길어지면서 풍력 발전량이 급감하자 인접국들이 노르웨이산 전기를 대량 수입한 결과다. 노르웨이 남부의 전기 요금(도매 기준)은 지난달 중순 킬로와트시(KWh)당 13크로네(약 1600원)까지 치솟았다. 2009년 이후 최고수준이자 직전 주의 20배에 달했다. 이에 노르웨이 정치권에서 국내 전기료 안정화를 위해 전기 수출을 제한하고자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북미 “전기가 무기”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영국을 겨냥한 전기 무기화 움직임도 포착됐다. EU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영국과 기술, 무역, 에너지 등 전 분야의 관계를 규정한 무역협력협정(TCA)을 맺었다. 양측은 내년에 TCA의 일부 조항을 재협상할 예정인데, 이 가운데 에너지 부문에서 ‘EU 회원국들 간 자유롭게 거래하는 전력 시장을 영국에 전면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내부 지침이 공유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집행위원회의 EU-영국 협상 관련 내부 문서를 입수해 이 같은 EU의 전력 장벽 계획을 보도했다. EU 당국은 해당 문서에서 “영국의 체리피킹 금지(no cherry-picking·선택적 접근 금지) 원칙이 전력 거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이 EU 단일 시장에 재가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면 EU의 통합된 전기 시장에 대한 접근권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서양 건너 북미 대륙에선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서도 전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캐나다에 25% 관세를 물리겠다는 폭탄 발언을 한 뒤 캐나다는 무역 협상에서 쓸 수 있는 패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에 석유와 전기 등 에너지와 광물 자원을 수출해 온 캐나다로서 에너지 자원이 중요한 협상 카드였다. 하지만 최근 해당 협상력이 약해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작년부터 가뭄 등 이상 기후로 캐나다의 수력 발전량이 급감한 탓에 역으로 미국에서 전기를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업계 “국가간 협력 필수”

발전사와 유틸리티 등 에너지 업계는 각국 정부의 전기 무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벨기에 엘리아 그룹을 비롯한 에너지 기업들은 북해 지역의 풍력 발전 개발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녹색 에너지 허브’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10월 당국에 “EU와 영국의 에너지 시장을 통합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가 간에 전력망을 연결해야 바람 세기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 단점을 해결하고,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EU 대사는 전력망을 차단하려는 노르웨이에 대해 “노르웨이가 필요할 때는 해당 인터커넥터를 통해 덴마크 등으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에너지 산업 단체인 에너지 트레이더 유럽의 마크 코플리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에게 큰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EU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전기 요금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회사 바링가도 최근 보고서에서 “EU와 영국이 전기 분야 협력을 개선하면 2040년까지 소비자들에게 440억 유로의 절감 효과를 제공하고 투자 비용도 16%가량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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