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제정 근로기준법에 통상임금 정의가 없는 이유

입력 2025-01-14 17:06  



지난해 12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사회적 파장이 컸던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었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가 고객과 소통을 위해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주로 판결의 요지와 향후 대응방안을 다루었고 신문이나 잡지에도 많은 기고가 이루어졌다.

기업들은 대법원이 2013년 수십년 동안 노사간 형성해 온 법률관계를 일거에 부정하자 상당한 타격을 받았으나 그 취지를 존중하여 취업규칙을 작성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 왔다. 그런데 10년 조금 지난 시점에 비록 소급효를 일부 제한하긴 했으나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형성된 법률관계가 전면 부정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루만 근무해도 주고 364일 넘게 근무해도 주지 않는 돈이 어떻게 통상임금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경제적 효과는 2013년 판결이 훨씬 커서 당시는 신의칙 적용까지 이야기되었으나 사용자에게 미친 심리적 충격은 2024년 판결이 압도적으로 큰 것 같다. 굉장히 오랜 기간 진통을 겪고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그 짧은 기간에 전면 부정되고 단 한 명도 종전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례적이었다. 이제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도 과연 언제까지 법리로써 존중받을 수 있을지 참으로 신뢰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 판결이 짧은 기간 내 심하게 흔들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동안 노동법학자들과 실무, 그리고 종전 법원에서 놓치고 있었던 그 무엇이 있었던 것 같다. 이에 72년 전으로 돌아가 그 때 근로기준법이 제시하였던 이정표를 찾아보고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대로 길을 찾아간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새삼스럽지만 제정 근로기준법 제19조는 “본법에서 평균임금이라 함은 이를 산정하여야 할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월간에 그 근로자에 대하여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근로일수로 제한 금액을 말한다. 취업 후 3월 미만도 이에 준한다”고 규정하였지만, 통상임금에 관하여는 정의규정 없이 제46조에서 사용자는 연장시간근로와 야간근로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였다. 나아가 제정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24조는 축약하자면 일정한 기간으로써 정하여진 임금에 대하여는 그 기간(일, 주, 월 등)의 소정 근로시간수로써 제한 금액을 통상임금으로 정하였는데 그에 관한 위임근거는 없었다.

제정 근로기준법 관련 입법자의 의사는 첫째 입법 자체로 명확하므로 시행령에서 따로 정의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 둘째 입법 자체로 명확하지 않지만 이는 노사자치로 정할 수 있다는 것, 셋째 입법 자체로 명확하지 않지만 시행령에 위임한다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런데 평균임금에 대한 법률규정을 보면 당시 입법자의 의사는 그 중 첫째 입장으로 통상임금은 평균임금에서 시간외근로 인한 가산수당, 야간·휴일근로에 대한 할증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의미하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입장에 설 때 개념 규정은 별도로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런데 지급시점이 그렇게 빈번하지 않고 적용대상 근로자(퇴직, 산재 등)가 극소수인 평균임금과 달리 통상임금은 거의 매일 지급시점이 돌아오므로 그 때마다 각 기업이 이를 매번 계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행정부는 이런 혼란을 보면 아무래도 입법자의 의사가 첫째 입장은 아닌 것 같다고 짐작하여 셋째 입장에 따라 입법부의 위임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사전확정성의 관점에서 시행령으로 통상임금을 정의해 나갔다. 기업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이를 신뢰하여 행정부가 정한 통상임금에 따라 임금을 지급해 왔고 그에 더하여 둘째 입장에 따라 노조와 협의해서 부족한 부분을 단체협약으로 보충해 왔다.

사법부는 한동안 행정부와 노사가 둘째 입장과 셋째 입장에 따라 통상임금에 관한 개념을 정립해 나가는 것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3년 둘째 입장과 셋째 입장은 모두 틀렸다는 전제에서 통상임금을 노사가 정할 수 없고 시행령도 위임근거가 없으므로 모두 무효라고 선언하면서 입법에 가까운 법률해석 권한을 행사하였다(제4의 길). 이 때 대법원은 다만 행정부와 민간 노사가 그간 형성하여 온 사전확정성 개념을 어느 정도 존중하여 고정성 개념을 사용하여 사전에 지급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발라내었다.

금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급시점을 기준으로 소정근로의 대가인지 여부를 판단(집단적 관찰)해서는 안 되고 근로계약에서 정한 대로 소정근로를 다하면 지급되는 것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개별적 관찰)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지금도 제정 근로기준법 입법자의 의사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근로의 대가인 임금은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당사자간 합의로 정해지고 이는 가산임금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실제로 임금 결정 과정을 보면 소정근로 외에 초과근로까지 고려한 총액을 기준으로 단체교섭이든 개별교섭이든 행해진다.

그렇다면 당시 입법자의 의사는 첫째 입장이 어렵다면 노사자치로 먼저 정하되 행정부가 공백을 보충하고 사법부는 위 양자로도 해결이 어려운 분쟁에서만 제한적으로 법률해석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통상임금이 수십조, 수백조가 오가는 경제효과를 지닌 것이었다면 입법자가 이를 정해 두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금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논리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대법원이 의도치 않게 노사자치 원칙이나 행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면서도 자신은 법률해석의 영역에서 벗어나 입법의 영역에 들어가 버린 것 같아 우려되는 점이 적지 않다.

이욱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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