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직원 식당에서마저 일본산 쌀이 아닌 대만산 쌀로 지은 밥이 배식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쌀 부족 대란, 이른바 ‘레이와의 쌀 소동’이 벌어진 데 이어 쌀값이 급등한 여파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쌀값이 치솟으며 작년 12월 일본은행 직원 식당에서도 메뉴에 사용되는 쌀이 일본산 쌀 대신 가격이 저렴한 대만산 쌀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밥맛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거나 ‘쌀값 폭등의 영향이 여기까지 왔다’는 게 직원들의 반응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은행 직원까지 레이와의 쌀 소동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레이와는 현재 일본의 연호다. 헤이세이 연호를 쓰던 1993년 쌀 부족 대란을 ‘헤이세이 쌀 소동’이라 불렀는데, 지난해 다시 쌀이 부족해지자 붙은 이름이 레이와의 쌀 소동이다.
일본은행은 길어지는 쌀값 폭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쌀류는 전년 동기 대비 63.6% 급등하며 197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햅쌀 공급이 시작된 뒤에도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아 물가 동향을 파악하는 조사통계국 등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쌀값은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 전년 대비 20~30% 올랐다. 앞서 쌀 품귀 현상을 겪은 유통업체들이 쌀 쟁탈전을 벌인 탓이다. 2023년 폭염 영향으로 쌀 유통량이 감소한 데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 지진에 따른 사재기 등으로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도시를 중심으로 대형 슈퍼 등 매장마다 쌀 품절이 잇따랐다.
이에 일본 내 쌀 유통의 절반을 담당하는 일본 농협(JA그룹)은 지난해 농가에서 쌀을 사들일 때 지불하는 수매가를 대폭 인상했다. 니가타, 홋카이도 등 주요 지역에서 전년 대비 20~40% 올렸다. JA와 경쟁하는 쌀 집하업체들은 JA에 대항해 농가 측에 더 높은 수매가를 제시했다.
일본은행은 당시만 해도 쌀값 상승에 대해 ‘일시적일 것’으로 봤다. 햅쌀이 풀리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예상보다 쌀 쟁탈전이 길어지면서 쌀값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사업자 간 매입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며 “조달이 불투명한 가운데 수요는 별로 떨어지지 않아 긴박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수개월 더 현재의 높은 가격 수준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기업의 업황 판단에도 쌀값 폭등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전국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에서 대기업의 소매업황판단지수(DI)는 13으로, 9월에 비해 15포인트 악화했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쌀값 영향이 어느 정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일부 외식업체는 쌀값 급등을 이유로 가격 인상에 나섰다. 젠쇼홀딩스의 규동 체인 ‘스키야’는 작년 11월 말부터 약 60%의 메뉴를 인상했다.
지난 9일 일본은행 지점장 회의에선 “쌀값을 비롯해 식품 물가 상승이 소비자 절약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니혼게이자이는 “금융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은행은 쌀값 동향과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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