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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재선에 성공하며 2019년부터 엘살바도르를 이끌어오고 있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강경 우파의 ‘모델’로 떠올랐다. 강력한 공권력으로 갱단 조직을 척결하는 등 사회 치안을 개선하는 동시에 정부 주도의 인프라 건설, 투자자 유치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성과를 내면서다. 다만 이러한 성장 이면에 민주주의 훼손이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1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엘살바도르는 지난해 연말 메시지에서 “우리나라는 평화, 신뢰, 낙관의 세계적 본보기”라며 “아무도 이를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력 범죄가 줄어들고 각종 인프라 건설을 통해 살기 좋은 국가가 됐다는 그의 자신감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부켈레 대통령은 X에 자신을 ‘철인왕(Philosopher King)’이라고 소개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지난해 12월 단 한 건의 살인 사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에만 60건 이상의 살인 사고가 발생한 국가다. FT는 엘살바도르 수도 중심부의 광장은 과거 밤에 걷기조차 위험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연령대의 군중들로 붐빈다고 전했다. 최근 비트코인 폭등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엘살바도르가 2021년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공공부문의 비트코인 관련 정책 축소를 조건으로 엘살바도르에 14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의 행보에 강경 우파들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FT는 “부켈레 대통령의 방식은 폭력 범죄 증가로 고군분투 중인 많은 라틴아메리카인에게 존경받고 있다”며 “초기에는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 때문에 외면했던 서방 정부도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른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이 2024년에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소식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X에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필요하며,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썼다. 지난해 6월 부켈레 대통령의 재취임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미국 대표단이 참석했고 부켈레 대통령 역시 20일 트럼프 취임식에 초청받았다.
현재 부켈레 대통령의 지지율은 90%를 넘긴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안정 과정에는 대규모 투옥 등 막대한 대가가 있었다며 일부 인권 운동가들은 인권 유린 가능성을 지적했다. 엘살바도르 인권단체 크리스탈리나의 클라라 로페즈 분석가는“우리는 단지 외형적인 치장만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며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인권 유린 사례를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2022년 3월 이후 부켈레 대통령은 8만3000명 이상을 투옥했고 현재 성인 남성의 3%가 수감되어있다. 첫 임기 중에는 의회에 무장 군경을 대동하고 들이닥친 적이 있고, 법무장관을 해임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대법관들을 임명하는 등 독재자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서방 세계는 부켈레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FT는 “미국은 부켈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과 언론 탄압을 비판하면서도, 범죄 단속에서의 성공과 이민 문제 완화에서의 협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다른 지도자들도 부켈레의 성공을 모델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FT는 “높은 범죄율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그의 정책을 모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부켈레 대통령의 리더십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안보와 인권 사이의 균형이라는 세계적 논쟁을 촉발한다”며 “앞으로의 상황은 국제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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