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불황의 그늘…'아는 맛'으로 버틴다

입력 2025-01-13 18:09   수정 2025-01-14 00:23

최근 국내 극장가에 익숙한 영화가 잇따라 걸리고 있다. 이렇다 할 대작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설 원작 영화, 리메이크 및 리부트(기존 영화의 캐릭터나 콘셉트를 살리고 새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것) 영화 등 기존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작품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다. 아예 예전 영화를 재개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면서 제작자도, 관객도 안전한 길을 택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베스트셀러·시리즈물이 대세
오는 22일 개봉하는 ‘언데드 다루는 법’은 스웨덴 작가 욘 A 린드크비스트가 쓴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린드크비스트는 영화 ‘렛미인’(2008) ‘경계선’(2019) 두 작품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로 스웨덴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렛미인에서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우정을, 경계선에서는 북유럽 신화 속 ‘트롤’을 현대 사회로 데려오며 초자연적 소재를 세련되게 풀어냈다.

‘언데드 다루는 법’은 세상을 떠난 가족, 연인이 대규모 정전 이후 살아있는 시체로 되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일반적인 좀비물과 달리 죽음과 삶의 경계, 그 안에서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휴머니즘 영화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노르웨이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아만다상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일찍부터 시네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작가가 직접 각본에 참여해 원작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4일 개봉하는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2015)의 두 번째 이야기다. 검은 사제들은 당시 약 544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오컬트 영화 중 드물게 흥행했다. 지난해 ‘파묘’가 한국 오컬트로 흥행의 꽃을 피운 만큼 ‘검은 수녀들’이 그 바통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해운대’(2009)의 권혁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등이 출연한다.

황영미 영화평론가는 “영화에서 핵심이 서사인데 잘 알려진 문학을 영화로 만들면 이미 보장된 서사에 연출적 시각만 덧붙이면 된다”며 “감독 입장에서도 작업이 수월하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관심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어 투자에 안정적인 포션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8일에는 청춘 멜로와 사운드트랙의 결합으로 성공을 거둔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8)이 한국판으로 공개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높은 완성도와 아련한 첫사랑 감성, 피아노 배틀 장면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안전제일주의’ 속 의외의 흥행도
‘익숙한 영화’ 현상은 지난해부터 지속된 재개봉 영화 열풍과도 결을 같이한다. 지난해 9월 재개봉한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은 관객 수 20만 명을 넘으며 흥행했다. 최근에 재개봉한 ‘더 폴: 디렉터스 컷’은 예술 영화임에도 입소문을 타 개봉 3주 만에 4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만 해도 ‘렛미인’ ‘도어즈’ 등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주요 영화관도 ‘색계’(CGV)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롯데시네마) 등 명작을 재개봉하는 등 이에 가세하고 있다.

영화계 전반에 지속되는 ‘익숙한 영화’ 풍토는 냉각된 영화 시장으로 인한 고육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영화관 관객 수는 1억2312명으로 2023년(1억2513명)에 비해 소폭 줄어들었다.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새로운 IP를 개발하려면 개발·홍보비가 많이 드는데 있던 작품을 하면 이 모든 비용이 대폭 감소한다”며 “시장이 불안하다 보니 투자에 소극적이면서 배급사들이 경쟁적으로 재개봉 판권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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