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지업계에선 친환경 흐름과 맞물려 종이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며 “편리하고 싼 플라스틱의 기능을 최대한 따라잡는 수준으로 제지·펄프 상품의 역량을 더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이 제품을 고부가가치화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을 하는 제지회사는 국내에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핵심은 기술 혁신과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고 꼽았다.
그는 DX를 통한 제조 혁신도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 펄프·제지 공장만 해도 로보틱스 등 첨단 장비를 갖췄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전통 제조 방식에 머무른 곳이 많아서다. 김 회장은 “인공지능(AI)과 자율화 시대에 다른 업종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고 제지업계도 발맞춰 가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제지업계가 석유화학업계를 적대시하기보다는 공존할 방법도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두 업계 모두 제품 재활용이 화두인 만큼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종이가 모든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진 않다”며 “페트병처럼 플라스틱업계가 자체적으로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부분은 그들이 하고, 라면·과자 봉지처럼 재활용이 쉽지 않은 분야를 제지업계가 나서는 것으로 서로 역할 분담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골판지 전문기업 아진P&P 대표인 김 회장은 2022년 학회 최초로 현직 교수가 아니라 현직 기업인 신분으로 회장에 취임했다. 제지 관련 학계가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산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지업계와 학계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이 경영하는 아진P&P는 LG전자와 손잡고 산업용 히트펌프 시스템 개발에 나서는 등 업계에서 혁신을 주도해 주목받고 있다. 히트펌프 시스템을 제지산업에 적용하면 공정상 배출되는 증발공기를 고효율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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