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이 1000억원을 들여 개편한 ‘차세대 나라장터’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이용자인 공무원과 기업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관급 공사와 물품 계약이 사실상 멈춰섰음에도 조달청은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개발에 참여한 한 업체는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시스템 갈아엎기’에 급급한 졸속 사업 추진이 국가 전자조달 시스템의 부실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문의 내용은 로그인·인증 오류, 개편 이전 정보 누락(업데이트 미비), 계약서 등 주요 문서 작성 관련 오류 등이다.
6일 개통한 차세대 나라장터는 조달청이 예산 955억원을 투입해 새로 구축한 조달 시스템이다. 노후화한 기존 나라장터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면 비대면으로 바꾸고, 조달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3년6개월간 개발했지만 새 시스템이 먹통이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안팎에서 폭주하고 있다. 조달사업을 발주하는 공무원과 수시로 접속해 정보를 찾고 입찰하는 기업 모두 불만이다. 주 이용자인 건설·제조사와 유통사는 ‘기존 시스템과 너무 다르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10년째 나라장터로 모 부처 조달에 참여해온 유통업체 B대표는 “세부 품목을 검색해 물품을 선택해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데, 새 시스템에선 조회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15일이 입찰 마감인데, 입찰을 연장할지 말지 공지조차 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건설사의 관급 공사 실적 신고 시점인 연초 새 시스템 개통을 강행하면서 불편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실적을 신고하고 나서 금액을 잘못 입력한 걸 알아 수정을 시도했지만 고쳐지지 않는 상태”라며 “2월까지가 실적 신고 시기인데, 굳이 지금 새 시스템을 열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업에 참여한 개발업체의 경영난이 시스템 품질 관리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SK C&C 컨소시엄에 지분 20%로 참여한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 조인트리는 지난해 4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조인트리 소속 개발자 30여 명도 사업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달청은 최대한 빨리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개통 전 세 차례 외부 공개를 통해 사용자 테스트를 할 땐 문제가 없었다”며 “차세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기준 연간 거래 실적이 143조원에 달하고 대다수 정부 부처와 수많은 기업이 물품을 구매하고 사업 발주 및 입찰에 참여하는 핵심 플랫폼을 주먹구구식으로 도입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2023년 국가 행정망 마비 사태 당시 나라장터에도 문제가 생겼다”며 “국가 전산망 최고정보책임자(CIO) 도입 등 많은 대책이 제시됐음에도 국가 전산망 개편 작업을 치밀하게 하지 못해 빚어진 사고”라고 지적했다.
안정훈/오유림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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