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1000억 들여 갈아엎었는데…"되는 게 없다" 불만 폭주

입력 2025-01-13 17:37   수정 2025-01-14 00:25

“기존 나라장터와 완전히 다른 데다 먹통까지 돼 입찰에 참여할 수가 없네요.”(중소 건설업체 수주담당자 A씨)

조달청이 1000억원을 들여 개편한 ‘차세대 나라장터’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이용자인 공무원과 기업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관급 공사와 물품 계약이 사실상 멈춰섰음에도 조달청은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개발에 참여한 한 업체는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시스템 갈아엎기’에 급급한 졸속 사업 추진이 국가 전자조달 시스템의 부실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스템 오류에 업체들 ‘울상’
13일 조달청에 따르면 차세대 나라장터가 개통한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접수된 나라장터 이용 관련 민원은 3만2365건에 달했다. 직전 주 334건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무려 97배 폭증했다.

주요 문의 내용은 로그인·인증 오류, 개편 이전 정보 누락(업데이트 미비), 계약서 등 주요 문서 작성 관련 오류 등이다.

6일 개통한 차세대 나라장터는 조달청이 예산 955억원을 투입해 새로 구축한 조달 시스템이다. 노후화한 기존 나라장터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면 비대면으로 바꾸고, 조달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3년6개월간 개발했지만 새 시스템이 먹통이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안팎에서 폭주하고 있다. 조달사업을 발주하는 공무원과 수시로 접속해 정보를 찾고 입찰하는 기업 모두 불만이다. 주 이용자인 건설·제조사와 유통사는 ‘기존 시스템과 너무 다르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10년째 나라장터로 모 부처 조달에 참여해온 유통업체 B대표는 “세부 품목을 검색해 물품을 선택해야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데, 새 시스템에선 조회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15일이 입찰 마감인데, 입찰을 연장할지 말지 공지조차 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건설사의 관급 공사 실적 신고 시점인 연초 새 시스템 개통을 강행하면서 불편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실적을 신고하고 나서 금액을 잘못 입력한 걸 알아 수정을 시도했지만 고쳐지지 않는 상태”라며 “2월까지가 실적 신고 시기인데, 굳이 지금 새 시스템을 열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조달청 내부에서도 ‘미완성’ 논란
시스템 개편을 주도한 조달청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2021년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고, 3년 만인 지난해 6월 개통을 목표로 했으나 차질이 빚어져 두 차례 연기한 끝에 이달 초 개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조달청 관계자는 “기존 시스템 유지보수팀과 소통하지 않고 신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며 “차세대 나라장터 오픈 후 오류 해소보다 새 문제가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사업에 참여한 개발업체의 경영난이 시스템 품질 관리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SK C&C 컨소시엄에 지분 20%로 참여한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 조인트리는 지난해 4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조인트리 소속 개발자 30여 명도 사업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달청은 최대한 빨리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개통 전 세 차례 외부 공개를 통해 사용자 테스트를 할 땐 문제가 없었다”며 “차세대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기준 연간 거래 실적이 143조원에 달하고 대다수 정부 부처와 수많은 기업이 물품을 구매하고 사업 발주 및 입찰에 참여하는 핵심 플랫폼을 주먹구구식으로 도입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2023년 국가 행정망 마비 사태 당시 나라장터에도 문제가 생겼다”며 “국가 전산망 최고정보책임자(CIO) 도입 등 많은 대책이 제시됐음에도 국가 전산망 개편 작업을 치밀하게 하지 못해 빚어진 사고”라고 지적했다.

안정훈/오유림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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