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키코의 어두운 그림자

입력 2025-01-13 17:34   수정 2025-01-14 00:14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해 기업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특히 내수가 주력인 대다수 중견·중소기업의 피해는 수출시장을 확보한 대기업과는 비교가 안 된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1주일 뒤 지역 수입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환율 영향 긴급 모니터링 결과에 그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철강 유통업체 A사는 “환율이 오르더라도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할 수 없어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했고, 신발 제조업체 J사는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로 경영 애로가 심화하고 있다”고 했다.

의아한 것은 가스 유통업체 H사처럼 “고환율 우려가 큰 상황이지만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기업이 적잖다는 대목이다. 평소 은행의 선물환 같은 환헤지 금융을 이용했다면 요즘 같은 때 환율 급등에 따른 손실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환헤지를 외면하는 것은 중소기업일수록 더 심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8월 수출 중소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49.3%가 환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과거에 비해 달라진 것도 거의 없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07년 상반기 무역애로 조사 결과에선 수출 중기 403곳 중 62.8%, 2011년 7월 292곳 수출 중기 대상 조사에선 37.3%가 ‘환헤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예나 지금이나 수출 중기인데도 40~60%는 환변동 위험 관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내수 중기라면 더 볼 것도 없다.

대기업이 아니라면 인력도, 여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8년 터진 키코(KIKO)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기인들의 전언이다. 파생상품에 잘못 가입하면 큰일 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키코는 옵션 상품으로 원·달러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변동 위험을 커버하지만, 1200원을 웃돌면 기업이 손실을 피하기 힘들게 설계된 상품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 1500원대로 치솟자 부도 위기에 내몰린 기업마저 생겼다. 180여 개 기업이 판매 은행을 불완전 판매와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하면서 소송전이 벌어졌고 대법원은 2013년 9월 은행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키코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8년 5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면서 키코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은행을 압박해 키코 피해 기업에 배상토록 추진했다. 은행들은 대법원 판결마저 나온 사안인데 배상금을 내도록 하는 관치에 기겁했지만 윤 원장은 밀어붙였다. 2020년 이후 대다수 은행이 거부했지만 은행들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이 낮은 선물환이라고 하더라도 적극 권유할 수 있겠느냐고 은행 관계자들은 반문한다. 중기인들이 몸을 사리는 와중에 은행마저 소극적이니 환변동에 대한 무방비 노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나서 금융사가 손실을 배상토록 한 결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을 23~50% 물어주도록 했다. 2019년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증권(DLF·DLS) 손실의 40~80%, 2020년 라임·옵티머스펀드는 불완전 판매에 책임을 물어 100% 배상토록 했다. 금융당국의 개입은 당시엔 그럴싸해 보여도 지나고 나면 후유증이 크다. 은행들은 지난해 1~2월 ELS 판매를 중단한 이후 아직도 재개하지 않고 있다. 당국의 과도한 개입은 환위험 관리든 ELS든 시장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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