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계획 뒤엎어야 할 판"…거야 돌변에 경제계 '초비상'

입력 2025-01-13 17:50   수정 2025-01-14 01:16

첨단 전략산업을 지원하고 소상공인의 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조세 개편 논의가 올스톱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주 돌연 태도를 바꿔 관련 논의를 중단하면서다. 반도체 기업에 투자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인공지능(AI)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하는 등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세제 혜택이 탄핵 정국 속 민주당의 정치적 스케줄에 따라 줄줄이 뒤로 밀리게 됐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지난해 처리하지 못한 의원 발의 세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난주부터 “간사 간 협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논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 당 차원에서 ‘기재위도 당분간 조세 개편 논의보다 비상계엄 및 탄핵 관련 현안 질의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관계자는 “최소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여당이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세법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앞서 여야는 지난해 11월 44개 세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지난달 정기국회에서 처리했어야 하지만 아직 기재위 조세소위도 넘지 못했다. 정기국회 당시 민주당이 감액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면서 정부가 세법 개정안에 담지 않은 의원 발의 법안은 모두 무산됐다. 이에 기재위에서 ‘늦었지만 1월에는 통과시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민주당의 전략 변경으로 또다시 논의가 중단된 것이다.

최근 가동을 시작한 민주당 민생경제회복단에서 “소상공인 세 부담 완화 법안 등은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으로 돌리자”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법안 처리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것이다. 기재위 여당 간사인 박수영 의원은 “여야 합의를 믿고 기다려온 기업들이 경영 불확실성에 놓이게 됐다”고 했다.
일주일 만에 입장 바꾼 거야…K칩스법·밸류업까지 무산 우려
여야 앞다퉈 추진하던 법마저…경제계 "정부 세제 지원 절실"
국회에서 대부분 입법 현안은 각 상임위원회의 여야 간사가 책임지고 조율한다. 지난해 11월 말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가 44개 조세 관련법에 대한 합의안을 도출했을 때 관련 기업들이 법안 처리를 낙관한 이유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정기국회에서 감액예산안을 일방 처리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예산 부수법안인 세법 개정안 중 정부 발의 법안만 처리되고 의원 발의 법안은 계류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상계엄으로 탄핵 정국이 조성돼 경제가 정치 스케줄에 밀리는 처지가 됐다.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K칩스법’ 통과를 확신한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되기를 기대하던 인공지능(AI)·자동차·조선업체들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불확실성 맞은 기업들
여야가 합의했지만 민주당의 입장 변화로 좌초 위기에 처한 가장 대표적인 세법 개정안은 K칩스법이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5%포인트 상향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지만 이재명 대표까지 힘을 실으며 여야가 합의안을 마련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시설 투자 공제율을 현행 1%에서 20%로 높이는 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부담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됐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임시투자세액공제 적용 기한을 2년 연장하는 안도 논의가 중단됐다. 2024년분과 2025년분 투자에 대해 법인세를 공제하는 내용으로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만큼 중소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AI와 미래형 운송수단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 세제 지원을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HD현대, 한화오션 등이 R&D 비용과 관련해 올해부터 30~40%의 세액공제를 받을 예정이었다.
불경기 대응도 어려워져
경기 하강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세제 혜택도 처리되지 않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워크아웃 등 어려움에 처한 자회사의 채무 상환을 지원하기 위해 모회사가 자산을 매각하면 법인세 납부를 유예해주는 게 골자다.

국내 주식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법안도 여야가 합의했지만 논의가 중단됐다. 일반투자형 ISA 납입한도를 2배 확대하고, 지금은 가입 대상이 아닌 고액 자산가도 ISA로 국내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내용이 법 개정안에 포함됐다. 법안 처리가 미뤄지면서 ISA를 통한 국내 주식 투자 증가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상목 “세법, 신속 처리해달라”
산업계는 세법 처리와 관련한 불확실성에 애태우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맹추격으로 친환경·고효율 선박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0.7년 차로 좁혀졌다”며 “한국 조선업계도 정부의 세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법 처리가 정치 일정에 따라 1년 이상 미뤄지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기 대선을 통해 정권 교체가 이뤄질 경우 지난해 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이 계속 논의될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가전략기술 확대나 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은 윤석열 정부 정책”이라며 “차기 정부에서 기조가 바뀌면 대선 이후 논의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13일 국회에서 이재명 대표를 만나 “상임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조세특례제한법 등 세법과 반도체특별법, 전력망법, 해상풍력법 등을 신속히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국정협의체와 여야 대표 회동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만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한편 기재위 야당 간사인 정태호 민주당 의원은 “작년 11월 말 처리 직전까지 간 세법 합의안을 뒤집은 건 여당”이라고 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세법안에 정부 개정 내용이 빠졌다는 이유로 처리에 응하지 않았다.

노경목/정상원/정소람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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