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방문한 미국 앨라배마주 현대자동차 공장. 자그마한 체구의 백인 여성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있는 검은색 GV70 차체 안으로 몸을 욱여넣어 하네스(전선 뭉치)를 조립했다. 뒤따른 차는 주황색 싼타페 하이브리드. 이번엔 근육질의 흑인 남성이 천장 레일을 타고 온 뒷좌석 문짝을 싼타페 차체에 결합했다.
앨라배마 공장은 이처럼 한 라인에서 6개 차종을 혼류 생산한다. 잘 팔리는 차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현대차 몽고메리 공장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 하이브리드카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작년 3만7000대를 기록한 싼타페 하이브리드 생산량을 내년까지 10만 대로 늘리는 동시에 다른 하이브리드 모델도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전기차 보조금은 세금 낭비”라며 취임 첫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지하고 대당 7500달러(약 1054만원)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도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채운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도 폐기하겠다고 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배기가스 배출량 규제도 대폭 완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의 대응법은 하이브리드카 생산 확대다. 안 그래도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신음하는데 보조금 폐지까지 더해지면 전기차 시장은 지금보다 더 쪼그라들 게 뻔해서다. 그렇다고 이제 와 내연기관 엔진을 개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수요가 급증한 하이브리드카 생산·판매를 늘려 체력을 비축한 뒤 언젠가 열릴 전기차 시대에 대비한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전략이다.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에서 투싼, 싼타페, 싼타페 하이브리드, 싼타크루즈, GV70, GV70 전동화 모델 등 6종을 생산한다. 이 중 유일한 하이브리드 모델인 싼타페 하이브리드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연간 35만 대를 만드는 기아 조지아주 공장에도 올해 하반기 텔루라이드 하이브리드를 투입하기로 했다. 최근 완공된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는 하반기 미국 출시 예정인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와 개발 중인 제네시스 하이브리드 생산기지로 삼기로 했다.
전기차 모델을 늘리고 있는 현대차그룹에는 호재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부문 세계 1위인 비야디(BYD) 등 중국산 전기차의 미국 입성을 막고 있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는데, 트럼프 정부는 10% 이상의 관세를 추가로 매기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투자를 늦추지 않는 이유다. 현대차는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 9을, 기아는 쿠페형 전기차 EV4를 조만간 미국에 내놓을 계획이다.
자율주행 최강자인 테슬라는 규제 완화로 날개를 달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2분기까지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을 모델3 등에 적용하고, 2026년까지 무인 로보택시를 대량 생산하는 계획에 탄력이 붙어서다.
자율주행 분야 후발 주자 현대차그룹에는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빅테크와 ‘동맹’을 맺고 테슬라에 맞서는 전략을 세웠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최강자 엔비디아와 손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차는 엔비디아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활용해 자율주행 기능을 대폭 끌어올리기로 했다. 자율주행 택시는 구글 계열사인 웨이모와 협업해 풀기로 했다. 미국 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는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해 미래 모빌리티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몽고메리=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