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방문한 미국 최대 태양광 발전소 핍스스탠더드에 늘어선 240개 컨테이너 문을 여니 LG에너지솔루션 로고부터 눈에 들어왔다. 컨테이너마다 LG 배터리팩이 192개씩 쌓여 있었다. 2.9㎿h에 해당하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이 배터리팩의 가격은 약 7억원. 같은 용량의 전기차 배터리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전력을 변환해 가정에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관리·운영 솔루션을 더해 부가가치를 높였다.
이혁재 LG에너지솔루션 북미총괄부사장은 “태양광 발전소와 함께 설치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는 도널드 트럼프 2기에도 급증할 것”이라며 “공급 부족이 쉽게 해결되기 힘든 점을 감안해 미국 내 ESS 생산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태양광 발전소나 가정용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는 데 쓰이는 ESS는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태양광 발전단지도 급증해서다. 2022년 54억달러(약 7조8000억원)이던 미국 ESS 시장 규모는 내년엔 91억달러(약 13조2000억원)로 68.5% 증가할 전망이다. 이 부사장은 “ESS 투자금의 40%를 환급해주는 투자세액공제(ITC) 정책이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트럼프 2기 정부도 이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키맨’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ESS와 태양광 패널 생산 회사를 운영하는 점도 이런 전망에 한몫하고 있다.
수익성도 ESS가 전기차용 배터리보다 높다. 1GWh를 기준으로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가격은 약 1100억원인데 ESS용 배터리는 24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운영·관리 솔루션을 더하면 3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관세장벽이 높아지는 건 호재다. 미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산 배터리에 28.4%의 관세를 물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여기에 60%까지 추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가격은 한국산보다 30% 정도 싸지만 60%까지 관세가 추가되면 가격이 역전된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점유율 26.2%)과 LG에너지솔루션(25.6%)에 이은 미국 시장 3위 업체인 CATL(12.1%) 물량을 국내 기업이 가져올 가능성이 생겼다는 의미다.
배터리 3사는 휴머노이드와 우주선, 도심항공교통(UAM), 드론 등 첨단 산업도 공략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들 시장이 배터리업계에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콜린가=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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