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생산 시설 없이, 2023년까지 인도네시아 내 3곳의 Apple Academy 연구소를 설치하고 1조 7,000억 루피아를 투자하기로 했다. 문제는 돈 많은 애플이, 투자하기로 한 금액에서 3,000억 루피아 부족하게 투자하며 시작되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약속 불이행을 빌미로 새로 출시되는 아이폰 16 판매를 불허한 것이다. 아이폰 16 출시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애플은 그제야 부족한 투자액을 마저 투자하고 신규 1억 달러 투자와 추가 연구소 설립, AirPods Max 헤드폰 패드 생산 시설 설립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거절당했다. 사실 애플 입장에서 인도네시아 시장에 전폭 투자는 딜레마다. 아이폰 시장 점유율이 2024년 말 기준 불과 10% 미만이고 본격적인 생산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첨단 부품 공급 환경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이 인도와 베트남을 아이폰과 맥북 생산 기지로 활용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고 동남아 최대 인구 시장을 마냥 내버려 두기도 어렵다. 애플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반 소비자들 역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비록 점유율 상위 5개 브랜드 중 삼성을 제외하곤 모두 중국 저가 스마트폰이 장악하고 있지만 학력과 구매력이 높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애플 사랑’은 다른 선진국 소비자들 못지않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급여의 몇 배가 되는 아이폰을 할부로 구매한다. 시내 중심가 카페에서는 청년들이 맥북으로 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급전이 필요한 경우 중고 판매가가 높은 맥북이나 아이폰이 환금성 높은 ‘자산’이라고 인식한다. 전체 인구 중위 연령이 30세에 불과하고 매년 5% 내외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애플의 사업 전망이 나쁘진 않다.
아이폰 16을 가까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서 구매해 가져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인도네시아 유심을 끼워 핸드폰을 쓰려면, IMEI(International Mobile Equipment Identity) 인증 등록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비용이 문제다. 미화 500달러를 초과한 과세 기준가에서 관세, 부가세, 소득세 등이 붙으면 만만치 않은 데다 항공료 등 여행 경비를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아이폰 16 판매를 불허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애플이 인도네시아에서 벌어가는 수익이 상당한 만큼, 이제는 인도네시아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해서 애플의 글로벌 생산 파트너로 넣어 달라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삼성과 중국 OPPO도 대규모 생산시설을 구축하여 직접 생산하고 있으며 자국 내에 아이폰 제조에 참여할 수 있는 17개 기업이 있다고 주장하며 애플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투자 실익을 따져야 하는 애플 입장에선 당장 인도네시아에 투자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는 Apple 관련 공급업체가 단 하나뿐인데, 이는 지역 내 이웃 국가들에 비해 상당한 차이가 있다. Apple의 2023년 공급업체 목록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는 공급업체가 19개, 태국은 24개, 베트남은 35개가 있다. 애플은 인도네시아의 산업 환경과 기술 수준을 따지지만,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만하다.
거듭되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압박과 아이폰 16 판매 금지에 대해 애플이 가장 최근에 내놓은 방안은 10억 달러를 투자하여 내년까지 인도네시아 바땀 지역에 AirTag를 생산하는 시설을 짓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아구스 (Agus Gumiwang Kartasasmita) 산업부 장관은, 애플 제안이 진일보했지만, 이 제안 역시 아이폰과 상관없는 생산 시설이라며 선을 그었다. 결국 애플이 인도네시아 정부가 만족할 만한 대규모 투자나 생산 공장 설립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 아이폰 16 판매 금지 조치는 계속될 것이다. 쉽게 해외를 드나들며 아이폰 16을 사고 세금을 낼 만큼 여유 있는 상류층이 아닌 일반 소비자들로서는, 정부와 애플 싸움에 고대하던 아이폰 16도 내 돈으로 못 사는 답답한 상황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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