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은 상하수도, 도로, 공원 등 정비 기반 시설이 열악하고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새로운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반면 재건축은 정비 기반 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 건축물에 해당하는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두 사업 모두 고층의 화려한 아파트와 각종 커뮤니티 등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 주택 단지를 짓는 점은 동일하다. 기존 구역이 빌라나 단독주택이라면 재개발, 오래된 구축 아파트였다면 재건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건물과 기반 시설을 모두 새로 조성하는 재개발에서는 종전 건물이 빌라이든 상가이든 토지 및 건축물의 감정평가 금액을 기준으로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다.
특히 상가 건물주는 재건축 기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고, 공사 기간 월세를 받지 못해 손해를 본다. 게다가 재건축 이후에도 '주택'이 아닌 상가만 받게 된다면 재건축에 선뜻 동의할 이유가 없다. 물론 재건축하면 더 좋은 시설의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권이 보장되지 않은 미래의 이익을 보고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재건축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설립되면 상가 건물주의 동의를 얻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상가 건물주들도 상가협의회라는 대표 단체를 만들어 추진위원회에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협상한다. 추진위가 협상에 실패할 경우, 상가를 제외하고 아파트만 재건축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실제로 그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 제1기 신도시 재건축을 위한 선도지구 선정 기준에서도 상가 동의율을 제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추진위는 시큰둥한 상가 건물주를 조합원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낮은 가격의 아파트 입주권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면 상가 건물주도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그곳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으로 재건축 동의서에 서명하게 되고, 재건축사업의 조합원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서초구의 한 재건축조합에서는 9명의 상가 조합원들이 추진위로부터 "최선을 다해 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재건축에 동의했다. 조합 또한 이들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부여하기 위해 정관을 바꾸는 안건을 총회에 부의했다.
문제는 해당 안건의 찬성률이 56.8%에 그쳐 통과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상가 조합원들은 과반수 조합원의 찬성을 얻었으니 정관을 변경해 아파트 분양권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조합은 입장을 바꿔 "이번 안건은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특별결의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조합장은 "미안하지만, 아파트 분양권을 줄 수 없으며, 원래대로 상가를 받아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상가 조합원들은 "조합이 말을 바꿨다"며 총회 후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상가 조합원들은 "애초부터 아파트 분양을 받을 생각이었지, 상가를 받을 거라면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았음에도 조합 집행부가 이를 협조하지 않은 것에 강한 배신감을 표했다.
대법원은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2/3의 특별결의로도 부족하며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도시정비법 시행령에 따르면 '새로운 상가를 건설하지 않거나, 새로운 상가의 전체 규모가 종전 규모보다 많이 감소해 일부 상가 조합원에게는 종전 자산 가액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의 상가를 공급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한해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이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설사 해당한다고 해도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판결에 따르면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달하는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얻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9명의 상가 조합원은 추진위의 약속에도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게 됐다.
동일한 취지의 판결은 계속된다. 서초구의 또 다른 재건축사업과 관련해 법원은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의 분양권을 부여하기 위해 조합과 상가협의체가 합의한 사항(최소 분양 단위 규모 추산을 위한 산정 비율)을 정관에 반영하기 위해서도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 혼란이 가중된 바 있다. 이 판결은 상가 조합의 종전 자산 가액과 새로 공급받는 공동주택 가액의 비율을 1 미만으로 정하는 것 또한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는 도시정비법 시행령 문언과도 다른 해석이기에 논란이 있다(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계속 중이다).
실제로 문제가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를 분양하는 관리처분계획이 도시정비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더라도 관리처분계획의 하자는 3개월 이내에 다투지 않으면 효력을 유지하고,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야만 다툴 수 있다. 또 중대한 하자라도 명백한 하자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관리처분계획의 결의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경우 더 이상 다툴 수 없다. 따라서 기존 분양을 전면적으로 다투는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앞으로다. 아파트 분양을 희망하며 재건축에 동의했던 상가 조합원들은 재건축 조합에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상가 건물주의 동의가 절실한 조합은 이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상가 조합원에게는 상가만을 공급하는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가를 제외한 재건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문제가 된 도시정비법 시행령은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설령 원칙을 유지한다고 해도 조합원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조합원 전원의 동의'라는 예외 조항을 고집한다면, 이는 사실상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재건축 부지는 조합원들의 사유재산인 만큼 모든 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반대할 경우 아무런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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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ㅣPF사업, 정비사업, 건설하도급 등 부동산 분쟁 전문가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수료했다. 투자자산운용사와 국가공인 원가분석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고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을 연구해 업계 최초로 전자책을 출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전문건설공제조합, 코트라(KOTRA) 및 각종 건설사와 학회에서 강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가졌으며,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건설사에 파견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해외부동산투자 관련 분쟁에도 관여하고 있다. 2024년 대한변협 우수변호사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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