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사당국에 협조를 절대 하지 않기로 유명해 범죄의 온상으로 지적받았던 텔레그램이 달라지고 있다.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서 체포된 이후 텔레그램이 불법 사용자 정보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 시작했고, 국내 범죄자들은 '초긴장' 상태다. 일부는 암호화폐 거래를 강화하거나 수시로 채팅방을 삭제하고 재개설하며 더욱 음지로 숨어들며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 있다.
수사 초기 경찰은 텔레그램의 비협조로 인해 검거 단서를 확보하지 못하고 수사 중지 결정을 내렸었다. 그러나 작년에 텔레그램이 수사 협조를 시작하며 채널 운영자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와 가입에 사용된 전화번호 정보를 제공했고, 이를 토대로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를 특정해 작년 12월 16일 A씨를 체포할 수 있었다. A씨는 같은 달 18일 구속돼 현재 제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작년 10월부터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 등 자사 이용약관을 위반한 한국 이용자의 정보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7일 공개된 텔레그램 공식 봇채널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지난해 4분기 한국 이용자 658명의 IP 주소 또는 전화번호를 한국 수사당국의 요청에 따라 제공했다.
이는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CEO가 작년 8월 미성년자 성 착취물 유포, 마약 밀매 공모, 자금 세탁 공모, 텔레그램 내 불법 행위와 관련한 수사기관과의 의사소통을 거부한 혐의 등으로 프랑스 수사당국에 체포되면서 생긴 변화다.
당초 텔레그램은 미국과 유럽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수사 협조를 해왔으나, 지난해 9월 서비스 약관과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개정하며 이를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 사용자의 99.999%는 범죄와 관련이 없지만, 불법 활동에 연루된 0.001%가 플랫폼 전체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만듦으로써 10억 명에 가까운 사용자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이 수사협조를 시작하며 단서 부족으로 그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경찰의 불법채널 관련 수사도 앞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
일부 불법 채널 운영자들은 암호화폐 거래를 강화하는 등 추적 회피 수법을 고도화하며 더욱 음지로 숨어들고 있다. 텔레그램 투명성 보고서가 공개된 7일 한 성착취물 공유방 운영자는 "이제 공개방에서 야동 못 보겠죠"라며 채널을 텔레그램 인앱 결제 시스템인 '스타' 기반의 유료방으로 전환했다. 텔레그램 스타는 암호화폐인 톤코인(Toncoin)과 연계돼 있는데, 사용자는 스타를 지불해 유료방에 입장할 수 있고 운영자는 이를 톤코인으로 교환할 수 있다.
수사 환경이 개선된 점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한계도 존재한다. 텔레그램이 이용자의 IP주소와 가입 당시 전화번호 외엔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페이스북이나 X(옛 트위터) 등 해외 대기업들은 이용자의 전체 로그 등 수사에 필요한 데이터를 전부 제공하는데 텔레그램은 그렇지 않다"며 "VPN 우회, 대포유심 사용 등 진화하는 범죄자들의 추적 회피 수법에 맞춰 경찰도 계속 수사기법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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