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미 사망한 범죄자로부터도 범죄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게 하는 ‘독립몰수제’ 도입을 추진한다. 독립몰수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간 이혼 소송에서 새롭게 드러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던 제도다.
법무부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5년 사회Ⅱ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에게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5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김석우 법무부 차관(장관 직무대행)은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범죄 피의자의) 사망, 도주 등 기소가 어려운 사안에서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독립몰수제란 범죄자를 특정하기 어렵거나 범죄자의 해외 도피, 소재 불명, 사망 등으로 공소 제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수익이 특정됐다면 이를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유엔부패방지협약(UNCAC)이나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 등 국제기구에서 유죄 판결 없이도 범죄수익 환수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고 있어 세계적 트렌드라는 평가다.
독립몰수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22대 국회에서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작년 9월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를 들어 독립몰수제 도입 필요성을 재차 주장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했음에도 더 이상 남은 자산이 없다고 했었는데, 노 관장 이혼 소송에서 숨겨둔 비자금이 더 있다고 예상되는 메모가 나왔다”며 “이에 대해 수사해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지적했다.
범죄수익 환수를 담당하는 검찰도 독립몰수제 도입에 긍정적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박 의원이 독립몰수제 도입에 관한 의견을 묻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 사례의 경우 독립몰수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그 가족이 불법 비자금임을 알고도 취득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으면 추징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고려해 개정안에는 “몰수 대상물을 제삼자가 상속·증여·유증받은 경우 이를 알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동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몰수는 형식적으로는 형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물적 보안처분(장래 범죄 예방을 위한 제재)에 속한다는 견해가 학계 다수설”이라고 짚은 뒤 “(대물적 보안처분은) 공소 제기와 처벌을 반드시 전제할 이유가 없다”며 독립몰수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범죄수익을 상속·증여·유증받은 제삼자에 대한 몰수·추징에 대해서도 박 위원은 “선의라 하더라도, 범인의 재산을 그대로 포괄 승계한 상속, 유증, 유류분 취득자의 재산은 몰수·추징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어 취지가 타당하다”는 견해를 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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