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줍줍'이라고 불리는 무순위 청약 제도 개편을 앞두고 알짜 단지에 실수요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앞으로 무순위 청약 제도가 바뀌면 작년 8월 경기 화성시 '동탄역 롯데캐슬'에 300만명이 몰렸던 것과 같은 '광풍'은 없겠지만 예비 청약자들이 '옥석 가리기'에 나서면서 성적이 양극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15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전날 서울 송파구 거여동 'e편한세상송파파크센트럴' 전용면적 84㎡ 1가구를 모집하는 무순위 청약에 8446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은 8446대 1이다. 이번 물량은 계약 취소에 따른 잔여분으로 다자녀 특별공급 1가구에 8000명 넘는 인원이 청약통장을 던졌다.
이번에 나온 물량 분양가는 9억8075만원에 책정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면적대는 지난해 11월 15억1500만원에 거래됐다. 작년에 거래된 가장 높은 금액은 15억9000만원(10월)으로 분양가보다 6억원 더 높은 셈이다.
다자녀 가구에만 한정된 물량이었지만 청약 전부터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은 "당첨될 분들 미리 축하드린다", "시세보다 6억원이나 낮으니 이런 게 진짜 로또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시세보다 가격이 높지만 실수요자들의 관심을 받은 단지는 또 있다. 지난 13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강서구 등촌동 '힐스테이트 등촌역'은 79가구 모집에 3996명이 몰려 50.5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2가가구를 모집하는 전용 59㎡B에 1842명이 몰려 921대 1의 경쟁률이 나왔다. 전용 84㎡ 분양가는 14억원 중반 수준이지만 전용 59㎡의 경우 11억원 초반이라 가격 경쟁력이 부각돼 청약자들이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전용 84㎡A 24.04대 1(48가구 모집에 1154명) △전용 84㎡B 46.71대 1(14가구 모집에 654명) △전용 84㎡C 23.07대 1(15가구 모집에 346가구) 등도 나머지 면적대로 두자릿수의 양호한 성적을 거뒀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무순위 청약 제도 개편을 앞두고 일부 실수요자들이 서울 무순위 청약에 몰리면서 양호한 성적이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오는 2월 무순위 청약제도 개편과 관련한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국토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 개편에 나선 것은 이 제도가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방아쇠가 된 것은 지난해 경기도 화성시 오산동 '동탄역 롯데캐슬'. 해당 아파트 무순위 청약에 294만4780명이 몰리면서 청약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또 부양가족 가점제 중 직계존손의 3년 이상 실거주 부분에서 위장전입을 하는 등 규정을 위반하는 사례가 나왔다.
이에 정부는 부양가족과 실거주 여부 등에 대한 서류 징구 및 확인 절차를 올해 상반기 중 강화한다. 건강보험내역 3년 치를 추가로 받아 직계존속의 거주 현황을 파악하는 방식의 법제화 등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도를 개선해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주택이 제대로 공급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무순위 청약 제도 개편으로 무주택이나 거주지 요건 등이 생기면서 '광풍' 분위기는 다소 완화될 것"이라면서 "누구나 가능했던 청약에 조건이 생기면서 현재 부동산 시장과 같이 지역별, 단지별 양극화가 더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제도 개편 자체가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지민 대표는 "단순히 일부 단지에 실수요자들이 몰리는 것만 가지고 제도를 바꿔선 안된다"며 "최근 지방을 중심으로 악성 미분양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이런 물량을 해소하는 데 있어 무순위 청약이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도 개편으로 수요가 줄어들면 지방은 지속적으로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수도권, 더 나아가서는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역시 "특정 과열 단지에 한정된 규제 적용, 실수요자 우선권 강화, 전매 제한 도입, 미계약 물량의 정책적 활용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개편보다 실수요자 보호와 시장 안정을 균형 있게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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