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15일 16:1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어펄마캐피탈은 화성코스메틱을 인수한 지 6개월 만에 예상치 못한 대형 악재를 만났다. 코로나19였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외출 자체를 꺼리다 보니 화장품 시장 자체가 고꾸라졌다. 색조 화장품 전문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화성코스메틱은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1년 만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40% 급감했다. 화성코스메틱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다.
영업과 R&D 역량 강화에 집중
불가항력의 감염병을 스스로 극복할 방법은 없었다. 어펄마캐피탈은 대신 미래를 대비하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코로나19가 끝난 뒤 화성코스메틱이 '퀀텀 점프'를 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기로 했다. 어펄마캐피탈의 '떡잎 찾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화장품 ODM 업체는 어떤 화장품 브랜드를 고객사로 유치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갈린다. 지금 잘 나가는 브랜드를 고객사로 두더라도 3년 뒤 실적을 장담할 수 없다. 유행에 민감한 화장품 특성 때문이다. 어펄마캐피탈은 화성코스메틱의 영업의 초점을 '될성부른 떡잎' 브랜드를 찾는 데 맞췄다. 이런 브랜드를 찾아 고객사로 확보하면 향후 브랜드가 성장할수록 화성코스메틱에 생산을 맡기는 물량도 늘어 자연스럽게 화성코스메틱의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해외 브랜드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를 고객사로 두는 걸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갑자기 시들면 ODM 업체도 함께 흔들릴 가능성이 커 고객사를 해외 화장품 브랜드로 다변화하는 건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유치한 대표적인 신규 고객사가 미국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 '로드스킨'과 미국의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선보인 브랜드 '메이크업 바이 마리오' 등이다. 1030 젊은 세대에게 이제 막 인기를 끄는 소위 말해 '뜨는' 브랜드다. 어펄마캐피탈은 인수 전 100곳에 불과했던 고객사를 해외 화장품 브랜드 중심으로 확대해 인수 2년여 만에 130곳으로 늘렸다. 현재 화성코스메틱의 고객사 중 해외 화장품 브랜드의 비율은 70%에 달한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를 고객사로 유치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에도 집중했다. 화장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와 달리 ODM 업체는 생산뿐 아니라 제품 개발까지 담당한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를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해선 R&D 역량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적이다. 어펄마캐피탈은 인수 이후 R&D 관련 인력을 세 배 이상 늘렸다. 대형 화장품 브랜드에도 잘 없는 조색사를 화성코스메틱이 직접 고용하기도 했다.
어펄마캐피탈에서 화성코스메틱 투자 및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이재원 전무는 "사람으로 치면 ODM업체에서 영업은 '팔과 다리', R&D는 '머리'로 불린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예상치 못한 위기를 직면한 화성코스메틱은 그 기간에 팔과 다리의 근육을 단련하고, 두뇌 회전을 빠르게 만들어 완전히 체질을 개선했다"고 말했다.
올해 역대급 실적 전망
어펄마캐피탈은 가장 자신 있는 포트폴리오 밸류업 전략인 '볼트온(유사 기업 추가 인수)'에도 나섰다. 2022년 또 다른 화장품 ODM 업체 나우코스를 인수했다. 나우코스는 화성코스메틱과 달리 기초화장품 전문 ODM 업체다. 아이브로우 등 색조화장품 전문 ODM 업체인 화성코스메틱은 고객사로부터 기초화장품 생산 의뢰를 받는 일이 많았다. 나우코스도 반대의 상황을 늘 겪었다. 양사의 고객사만 서로 연계해도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위기 때 미래를 준비한 화성코스메틱은 코로나19 파고를 넘은 뒤 가파른 실적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엔 매출 919억원, 영업이익 155억원을 기록했다. 어펄마캐피탈이 인수한 해인 2019년과 비교하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2배가량 늘었다. 지난해 EBITDA는 200억원을 넘어섰다. 화성코스메틱과 나우코스메틱의 실적을 합치면 지난해 매출은 1612억원, EBITDA는 255억원에 달한다.
올해 실적은 더욱 기대된다. 코로나19 시기 적극적으로 해외 영업에 나서 고객사로 유치했던 해외 화장품 브랜드들이 성장하며 매년 화성코스메틱에 맡기는 생산 물량을 늘리고 있어서다. 이 브랜드들은 위탁 생산 물량도 늘렸지만 생산 제품도 다양화하고 있다. 아이브로우(눈썹 그리는 연필) 생산을 맡겼던 브랜드가 화성코스메틱의 품질력을 인정하고 립스틱이나 파운데이션 생산까지 맡기는 식이다. 어펄마캐피탈은 올해가 코로나19 시기에 열심히 뿌렸던 씨앗이 꽃을 피우는 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는 유행에 따라 실적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과 달리 ODM 업체는 이런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A라는 화장품 브랜드의 인기가 꺾이더라도 130여개의 국내외 고객사를 둔 ODM 업체 화성코스메틱에는 큰 영향이 없다. 그래서 어펄마캐피탈은 화성코스메틱 투자를 '화장품 ETF' 투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전무는 "화성코스메틱 투자는 130여개 화장품 브랜드에 분산 투자한 것과 비슷하다"며 "생산 시설을 갖추지 않은 인디 화장품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ODM 업체는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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