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일찍 잠들었다가 깨어났던 12월의 어느 새벽, 갑작스레 맞이한 계엄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사 시험 이후 처음으로 헌법 속에서 계엄 관련 조문을 찾아보고, 뉴스를 보며 탄핵 등 조심스레 향후 절차를 법률가로서 전망해보기도 했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를지 언정, 탄핵 등 국가 통치구조와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의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다면 헌법 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국가에게 헌법이 있다면, 기업에는 정관이 있다. 국가의 통치와 관련된 기본원리 등을 담은 규범이 헌법이라면, 회사는 헌법과 같은 기능을 정관이 담당한다. 정관은 회사 조직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내부 규정인 동시에 회사의 본질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이에 우리나라 상법은 회사의 설립 시 정관의 작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관은 회사의 근간이 되는 기본 규범이지만,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은 인터넷에서 검색한 샘플을 다운받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간혹 아래 A사의 사례처럼 정관이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표님, 내부 검토 결과 투자 진행이 어렵다고 하네요! 정관 변경을 하지 않고는 투자금 납입이 어려울 것 같아요. 펀드 소진 등 이슈가 있어 다음주까지 투자금 납입을 할 수 없다면 저희도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딥테크 스타트업으로서 기술력과 시장성 등을 인정받은 A사. 투자를 논의 중이던 담당 심사역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다. 정관 문제로 투자가 어려워졌다는 소식, 수많은 투자 허들 가운데서도 생각지 못한 이슈였다.
A사 대표님은 일주일안에 정관 개정을 마치지 못하면 새롭게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피가 바싹 마르는 듯 했다.
"변호사님, 런웨이도 한달 반 정도밖에 안 남았어요!"
퇴근 후 받은 전화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A사 대표님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긴급하게 정관 개정안 작업 및 정관 개정 절차 준비 등을 준비했다. 본래 주주총회 소집 절차에만 2주, 자본금 10억원 미만인 소규모 회사 특례를 고려해도 10일이 소요된다. 주주 전원의 동의로 주주총회 소집 통지 생략 등을 통해 빠르게 정관 개정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으나, 하필이면 기존에 투자 받은 엔젤투자자 중 1명과 사이가 나빠져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정관 개정을 신속히 마무리해 연말 내 투자금 납입을 할 수 있게 된 A사 대표님은 가끔씩 그 때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고 말한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정관 때문에 회사가 자칫하면 문닫을 뻔 했다고 생각하니 정말 식은땀이 나더라구요.”
이처럼 정관 작성은 법률전문가의 검토를 받는 것을 권장하지만, 초기 스타트업 특성상 법률 자문 비용 등의 지출이 부담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아래와 같은 사항을 최소한으로 체크해봐야 한다.
'제3자 신주발행을 위한 근거 규정'이 필요하다. 투자 유치 시 대다수의 경우 투자자에게 회사의 신주를 배정하여 주는 제3자 신주발행의 형태로 이루어지게 된다. 상법에 의하면 기존 주주는 해당 주주가 소유한 주식 수에 비례해 신주를 배정할 권리를 갖게 되는데(상법 제418조 제1항),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도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기재해 둔다면 제3자에게도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상법 제418조 제2항).
'종류주식에 대한 근거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주식회사의 주식에는 보통주식과 종류주식이 있는데, 주주로서 특별히 누리는 우선권 없이 의결권과 배당권 등 가장 일반적이고 표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식을 보통주식이라고 한다. 반면 종류주식은 보통주식에 비해 주주가 유리하게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이 추가적으로 붙어 있다. 종류주식의 권리에 따라 우선주식, 상환주식, 전환주식 등으로 구분하며 이를 혼합하여 전환우선주(CPS), 상환전환우선주(RCPS)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스타트업 투자는 보통주 인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RCPS를 비롯한 종류주식의 인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수이다. 우리나라 상법 제344조 제2항에 의하면 종류주식은 그 내용과 수량이 회사 정관을 통해 미리 정해져 있을 것을 요하기에, 종류주식에 대한 내용이 정관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 신규투자 시 종류주식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투자자로서 자주 접하게 되는 사례들이 위와 같이 투자 유치를 앞두고 정관에 제3자 배정을 위한 신주배정의 근거 규정이 없거나 종류주식에 대한 근거 규정이 없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투자를 진행할 수가 없어, A사의 사례와 같이 부득이 정관 개정 절차를 거친 후 투자금 납입을 진행하게 된다.
한편, 투자금 납입 등은 가능하지만 조만간 정관 개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례들도 자주 접한다. 사업 목적을 폭넓게 기재하였는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공고가 가능하도록 작성하였는가, 회사가 발행할 주식의 총수를 넉넉히 설정하였는가, 액면가 및 설립시 발행 주식 수를 적절히 설립하였는가,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의 근거규정을 마련하였는가, 자본금 총액 10억원 미만인 소규모 회사로서 특례를 설정하였는가 등은 투자에 앞서 함께 살펴보는 주요 요소들이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하듯 정관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의 3분의 1 이상 동의)라는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별 고민 없이 작성한 정관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사업에 앞서 정관부터 꼼꼼히 작성해보면 어떨까.
이현우 님은 수년간 증권사 및 금융지주사 변호사로 근무하다, 2022년 4월 블루포인트에 합류했다. 대학 시절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액셀러레이터(AC)에서 기업의 유년기인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자 한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스타트업 대표님이 마주할 수 있는 법률 이슈를 예방적 차원에서 함께 고민한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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