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의 살림꾼 ‘관리역’을 아시나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입력 2025-01-14 16:54   수정 2025-01-14 16:55

꿈꿔왔던 벤처캐피탈(VC)에 입사하게 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스타트업 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타트업과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것도 초기 투자로 유명한 카카오벤처스에 입사하다니. 그간 취업준비로 고생했던 시절들이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가고, 넘치게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몇 해전 방영했던 드라마 ‘스타트업’ 덕분인지 벤처캐피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전보다 한단계 상승했다. 특히 투자 심사역(극 중 한지평 역)은 누가 봐도 매력있는 직업이라 벤처캐피탈에 취업한 신입사원들에게 종종 동경의 눈빛을 받곤 한다.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아 심사역은 아니에요” 라며 머쓱하게 넘어가기도 한다.

그럼 벤처캐피탈에서 심사역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할까?

벤처캐피탈마다 다르긴 하지만, 카카오벤처스에는 총 세 팀이 있다. 보석같은 딜을 발굴하고 피투자사의 가치를 높여 엑싯까지 이르게 하는 투자 심사역, 카카오벤처스와 패밀리 여정을 대내외에 전하는 커뮤니케이션팀, 그리고 내가 속한 기획관리팀이다.

VC는 보통 벤처투자조합 등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를 하는데, 기획관리팀은 이 펀드에 출자를 하는 출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리스크는 없는지 체크해서 펀드 만기까지 무탈하게 운영되도록 돕고 있다. 그 외에도 팁스 같은 정부지원사업과, 법인 운영에 관한 일들 예를 들어 인사, 총무, 자금, 공시, 회계, 세무 같은 백오피스 업무도 기획관리팀의 역할이다.

기획관리팀의 업무가 다른 직무에 비해 세련되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무가 아니다 보니, 사람에 따라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낄 수도 있다. 나도 입사 초반에는 그런 고민을 가진 적이 있다.

입사 초,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회계 전표와 씨름하며 점심시간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퇴근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사람을 대하며 에너지를 얻는 데다가, 회계 지식은 하나도 몰랐던 나는 이 직무가 나에게 맡는 걸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기획관리팀 업무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라는 편견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교만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투자팀에서 “우리 이런 분야 투자하고 싶은데 투자 해도 돼요?”라거나, 스타트업 대표님이 “정기주주총회가 처음인데 어떤 안건을 필수로 넣어야 할까요?” 혹은 “ 재무제표 처음 만들어보는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각종 법령과 조합 규약을 드나들며 내용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또한 매년 갱신되는 가이드라인을 마주하며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놓치는 것 없이, 그리고 효율적으로 펀드 관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관리팀 업무를 노잼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내가 하는 업무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모든 스포츠 경기에는 공격수와 수비수가 있는 것처럼, 벤처캐피탈에도 공격수 같은 심사역이 있고, 수비수 같은 관리역이 있다. 경기가 잘 풀릴 때는 홈런치고 멋진 드리블을 날리는 공격수가 주목을 받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떤 상황에도 점수를 주지 않는 수비수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법. 지금처럼 투자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관리팀의 역할이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

혹시 예전의 나처럼 VC 관리팀의 업무를 오해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관리팀은 지금도 출자자의 수익을 지키기 위해, 펀드의 안정성을 위해 계약서와 재무제표, 각종 요청자료의 늪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화영 님은 인생 100세 시대에 재미없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아 재밌는 일을 찾던 중 스타트업의 젊고 활기찬 기운에 매료돼 2020년 카카오벤처스에 입사했다. 한 손엔 따스한 사랑을, 다른 한 손엔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이며, 요즘은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하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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