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카스트라토를 다룬 영화 ‘파리넬리’(1995). 청명한 고음을 내던 열아홉 살 소년은 자신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파리넬리에게 매료됐다. 한국의 1세대 카운터테너 이동규(46·사진) 이야기다. 카운터테너는 여성 음역까지 낼 수 있는 남성 성악가로 과거 카스트라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최근 만난 이동규는 “파리넬리를 보고 내 높은 목소리로도 성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린이합창단을 오래 했는데, 미성인 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변성기가 지나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발성을 터득했어요.”
캐나다 밴쿠버 음악 아카데미에서 성악을 배운 그는 스페인 비냐스 콩쿠르(2006), 미국 뉴욕 조지런던 콩쿠르(2006)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진출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등 최정상급 오페라 극장에도 캐스팅됐다.
다만 그는 무대와 배역이 다양하지 않은 카운터테너였다. 카운터테너의 레퍼토리는 바로크, 현대 음악이 대부분인데 이탈리아 오페라를 주로 무대에 올리는 한국에서는 더욱 기회가 적었다. “‘아베 마리아’ ‘울게 하소서’를 불러달라는 섭외가 대부분이었어요. 그것만 계속 부르니까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중 인생 2막이 시작됐다. 2023년 JTBC 팬텀싱어4에 출연하면서다. 4인조 그룹 포르테나로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스스로를 “팬텀싱어 출신을 통틀어 가장 덕을 본 사람”이라며 웃었다. “‘성악가가 이런 노래도 할 줄 알아?’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제겐 큰 도전이었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죠.”
크로스오버 활동으로 그는 대중성이라는 자산을 얻었다. 팬덤이 생기고 이들과 소통하며 지금은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크로스오버의 장점이 ‘이지 리스닝’이잖아요. 제 팬들은 트로트와 가요 쪽은 안 좋아하고 오페라는 어려워하는 분들이에요. 크로스오버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쉽게 들려주니까 이분들을 (클래식으로) 끌어올 수 있겠다 싶었죠.”
그는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고 재차 말했다. 그는 배역, 장르를 한정하지 않고 오페라·연극 연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연내에는 바로크 음악을 친숙하게 재해석한 음반을 발매할 계획이다.
“요리에도 재료가 정말 많잖아요. 나라마다 재료가 다르고, 같은 재료도 사용법이 다 다르죠. 한 가지 요리법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여러 장르를 활용하면 그만큼 사용할 재료가 많아지는 거니까 표현이 더 다양하고 깊어지지 않을까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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