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물'과 '두 늑대' 이야기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5-01-14 17:31   수정 2025-01-15 11:29



‘목에 걸린 쇠고리의 나사못을 기둥에 박느라 쩡쩡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동안, 그는 울고 있었고, 그 눈물에 질식돼 말도 못 했다. 그는 겨우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파브롤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여전히 흐느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가 천천히 내리며 마치 키가 다른 일곱 사람의 머리를 연달아 어루만지듯 했다. 그의 몸짓으로 사람들은 그가 한 일이 무엇이든 일곱 명의 어린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먹을 것을 주기 위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빅토르 위고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빵 한 덩이를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히며 오열하는 장면이다. 그는 무거운 쇠사슬을 차고 감옥 마당의 땅바닥에 앉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운다. 굶주림에 지친 누나와 어린 조카 일곱은 이제 어떻게 하나. ‘톱으로 밑동이 잘린 어린나무의 한 줌 나뭇잎들’로 흩어지겠지…. 법은 가난한 사람에게 왜 이리도 가혹한가. 그는 절망과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끌려간다.

"장 발장은 우는 사람의 상징"

감옥에서 그는 우는 대신 탈출을 기도한다. 불합리한 세상과 모진 운명을 원망하며 네 번이나 탈옥을 시도한다. 그때마다 실패하는 바람에 형기가 19년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46세가 돼서야 감옥 밖으로 나온 그는 너무 깊은 증오 때문에 눈물을 잃었다. 우는 법을 잊었다. 그런 그가 은촛대 사건으로 미리엘 주교에게 감명받고 19년 만에 다시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았다.

이 사람의 영혼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불문학자 이병수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울다’라는 동사를 키워드로 그 내면을 비춘다. 이 교수는 고전 명작 21편을 핵심 동사로 재조명한 인문 에세이 <동사 수업>에서 “장발장은 우는 사람의 상징”이라며 “증오의 눈물과 함께 어둠 속에 갇힌 그의 영혼이 미리엘 주교를 만나 사랑의 눈물을 흘리고 암흑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세상을 미워하던 죄수에서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설명한다.

전과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도 배척당하는 장발장, 갈 곳 없는 그를 위해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은식기를 훔친 그에게 은촛대까지 내주며 “이제 당신은 선(善)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미리엘 주교, 이에 감격한 장발장이 눈물로 참회한 뒤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악의 세계에서 선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 모두 ‘울다’라는 동사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울음은 최초의 언어다. 아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표현하는 신체 언어다.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울고, 자라면서 운다. 아프고 괴로울 때 울고, 기뻐서 감격할 때도 운다. 우는 것은 간절한 마음의 표출이다. 요동치는 감정의 격한 몸짓이다. 그래서 눈물을 마음의 땀이라고 한다. 그 땀이 우리를 울고 웃게 한다.

눈물은 감정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분노할 때 눈물은 짜고 쓰다.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수분은 적고 나트륨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슬플 때 눈물은 산성이 많아 신맛이 난다. 기쁠 때 눈물에는 포도당이 들어 있어 짜지 않고 단맛이 난다. 같은 액체라도 증오의 눈물과 사랑의 눈물이 이렇게 다르다.



울음의 근본, 눈물의 원천은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있는 우물이다. 그 깊은 내면의 우물을 울리는 공명음이 곧 울음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증오와 사랑의 우물이 공존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전설의 ‘두 마리 늑대’와 같다.

원주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한다. “내 안에는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와 증오,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이기심이지. 두 번째는 선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과 사랑, 공감, 평화, 희망, 조화,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아이가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고 묻자 노인은 답한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

"그 사람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이 얘기는 우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키우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나는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며 사는가. 악한 늑대는 증오의 눈물을 먹고 산다. 그 맛은 쓰고 짜다. 선한 늑대는 사랑의 눈물을 먹고 산다. 그 맛은 달다. 그러니 선한 늑대에게만 먹이를 주자. 아니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악한 늑대에게도 기회를 주자.

악한 늑대를 선한 늑대로, 증오의 눈물을 사랑의 눈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 안의 우물에서 울리는 공명의 근본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소리의 높낮이와 진폭에 따라 생각의 각도를 조절하고 행동의 방향을 바꿔보자. 그러다 보면 남의 우물에서 울리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두 우물과 두 눈물이 만나 ‘공감의 강물’을 이루는 소리까지 들릴 것이다. 그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서로를 껴안고 흘러가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공감은 상대가 증오의 눈물로 고통스러워할 때 그 깊은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쓰라린지 헤아려 주는 일이다. 상대의 속사정이 어떤지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런 배려가 곧 선한 마음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선한 행동이다. 동사로 치면 ‘어루만지다’와 ‘보듬다’ ‘품다’와 같이 둥글고 품이 넓은 것이다. ‘어루만지다’는 부드럽게 쓰다듬어 만지는 것, ‘보듬다’와 ‘품다’는 가슴으로 품어 안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젖을 먹이는 장면을 그려보자.

세상이 어둡고 세태가 엄혹할수록 공감과 사랑, 선한 마음, 넓은 품, 어둠을 밝히는 빛의 소중함이 커진다. 대립과 분열, 분노와 저주로 얼룩진 시대에는 서로를 어루만지는 선한 행동이 더 절실하다. 장발장이 주교 덕분에 ‘선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나듯이 선함과 사랑은 암흑을 가르는 빛이요, 인생을 밝히는 등불이다. 그 빛으로 나와 타인의 발밑을 함께 비출 줄 알아야 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먼 길을 걸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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