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서울 한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다가 학생에게 한국의 저성장을 우려하는 취지의 질문을 받자 이같이 되물었다. 질문한 학생은 “연 6% 성장률이 적당한 것 같다”고 답했다.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뒤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수출 중심의 과거 고성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있던 것이다. 이 총재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면서도 “현재 잠재성장률은 2% 정도”라며 눈높이를 낮췄다.
한 나라는 보통 급격한 성장의 시대를 거쳐 선진국이 된다. 그 이후로는 대체로 안정적이지만 낮은 수준의 성장을 한다. 한국은 1970년대 이후 10% 안팎의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기록했으나 국내총생산(GDP)이 1조3000억달러를 넘어선 2010년대 초반부터 3%대 밑으로 내려갔다.
한국이 6% 넘게 성장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기저효과가 있던 2010년(7.0%)을 제외하면 2002년(7.7%)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6%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베트남 필리핀 코트디부아르 탄자니아 등 개발도상국이다.
당국자들은 그렇다고 본다. 이 총재는 최근 1.9% 성장률을 언급하며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26개국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인 1.8%를 웃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 성장률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와 같은 상황으로 보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IMF의 지난해 10월 경제전망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선진국은 1%대 이하 성장률이 예상된다. 독일(0.8%)과 이탈리아(0.8%)는 0%대가 우려된다. 한국은 뉴질랜드(1.9%)와 함께 13위로 딱 중간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은 이를 반영해 잇달아 전망을 낮추고 있다. JP모간은 최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3%로 내렸다. 모건스탠리와 씨티, 캐피털이코노믹스 등은 1.5%를 전망했다. 한경 이코노미스트 클럽 전문가 20명이 제시한 평균 성장률은 1.65% 수준이다.
IB 전망치 중 최저 수준인 1.3% 성장이 현실화하면 26개국 평균보다 높다던 한국 성장률은 평균(1.8%)을 크게 밑돌게 된다. 순위도 13위에서 19위로 내려가 하위권으로 추락한다. ‘위기’라는 판단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1%대 성장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도 그것이 1%대 초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률 전망치가 잠재성장률에 크게 못 미치는 1%대 초반으로 내려가면 경제는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경제 주체의 심리를 회복하는 일도 더 어려워진다. 정부가 단기적 부양책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한은이 이례적인 3연속 금리 인하 카드까지 배제하지 않고 고민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장기적으로는 구조개혁이 절실하다. 한은에 따르면 2024~2026년 2.0%로 추정된 잠재성장률은 2025~2029년 1.8%로 떨어지고 2040년께 0%대에 진입한다. 1%대 후반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조차 도전적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 교육, 산업 재편 등과 관련해 분야를 넘나들며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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