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

입력 2025-01-14 17:36   수정 2025-01-15 00:52

정적이던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지난 대선에서 서로를 비방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나란히 앉아 웃으며 대화했다. 지난 9일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엄수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 모습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등 생존해 있는 전·현직 대통령 다섯 명이 당파를 막론하고 모두 모여 카터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죽은 카터가 정치 화합을 이뤄냈다”(뉴욕타임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보도가 당시 상황을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장례식은 한편으로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립 구도 부각된 장례식
오바마 전 대통령 외에 다른 전·현직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인 바이든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물론 같은 공화당 소속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 당선인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공식 지지할 계획이 없다며 트럼프와 거리를 뒀다. 트럼프 1기 집권 시절에는 그의 보호무역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행사장에 들어설 때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지만 펜스의 부인은 그대로 앉아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펜스는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라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갈라섰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불참했다. 예정대로라면 트럼프의 옆자리에 앉아야 했다. 트럼프는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원 유세에 나선 오바마 여사를 향해 “못됐다.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도 서로 냉랭한 모습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 언론 인터뷰에서 해리스 부통령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선거에서 트럼프를 이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수가 정당화된다는 트럼프
미국 정치의 분열상은 3일 제119대 의회 상원의원 취임 선서식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선서를 주재한 해리스 부통령(상원의장 겸임)이 무대에 나온 데브 피셔 공화당 상원의원 내외에게 악수를 청하자 의원의 남편은 땅만 쳐다본 채 악수를 거부했다.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이라는 구도까지 부각되며 정치적으로 논란이 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가끔은 복수가 정당화될 수 있다”며 취임 후 당파를 막론하고 정치 보복에 나설 것을 시사해 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대통령인 바이든과 그 가족 전체를 추적할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이라고 공언하는가 하면, 불법 이민자의 침입을 용인했다며 해리스 부통령을 “탄핵하고 기소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1·6 의회 폭동’ 사태를 부추긴 혐의로 자신에 대한 기소를 권고한 같은 당 소속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에 대해서도 “감옥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의회 폭동 가담자에 대해서는 취임 즉시 사면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피의 숙청’에 나선다. 라이벌 마피아 조직의 보스뿐만 아니라 그에게 협조한 내부자도 모두 제거한다. 이번 카터 전 대통령 장례식은 어쩌면 폭풍전야의 고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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