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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과잉 규제가 낳은 풍자극
밈 코인 유행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과도한 가상자산 규제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으로 자리매김했다. SEC가 제시하는 '증권성' 기준에 따른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실질적인 효용이 없는 밈 코인 열풍을 촉발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강아지나 개구리 그림이 그려진 코인들이 어떻게 1천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규제할 수록 몰린다"...밈 코인 열풍 뒤 '과잉 규제' [한경 코알라] 밈 코인의 역사
2022년의 하락장을 뒤로하고 2023년부터 비트코인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ETF 승인 기대감 속에 비트코인 가격은 급등했고, 제도권 금융의 관심도 집중됐다. 하지만 크립토 생태계 내부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밈 코인'의 등장이다. 비트코인 독주 속에 알트코인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디젠(degen)'이라 불리는 '웹3 네이티브'들은 사업 계획이나 실질적인 효용이 없는 밈 코인을 발행하고 거래하며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밈 코인의 시초는 2013년 비트코인 소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도지코인(DOGE)이다. 개발자 빌리 마커스와 잭슨 파머는 복잡한 비트코인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만들고자 도지코인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2020년에는 도지코인과 유사하지만 다른 강아지를 로고로 사용한 시바이누(SHIB)가 등장했다. 이 두 코인의 로고가 인터넷 밈에서 유래했기에, 사람들은 이들을 밈 코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23년에는 인터넷 밈 '개구리 페페'를 차용한 페페코인(PEPE) 출시를 기점으로 밈 코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가 저렴한 솔라나 네트워크에서 밈 코인 유행이 더욱 두드러졌다.
밈 코인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술적 정의는 없지만, 밈 코인으로 인식되는 코인들의 대부분은 △사업계획이 없고, △유틸리티(사용처)가 없고, △발행자가 없거나 익명이며, △발행자 물량(소위 '재단 물량')이 없고, △이름이나 로고 등을 인터넷 밈에서 차용한다. 즉, 밈 코인은 발행 주체도 불분명하고 실질적인 쓸모도 없으며, '무엇을 하는 코인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자극적인 로고와 이름을 사용하는 코인이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장난스럽게 발행된 밈 코인의 시가총액 합계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밈 코인 거래는 주로 탈중앙화 거래소(DEX)에서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대형 중앙화 거래소에도 속속 상장되며 사회적 관심과 함께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쓸모없는' 코인이 이렇게 유행하게 된 것일까?
밈 코인 대유행의 원인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밈 코인 대유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SEC의 과잉 규제다. SEC는 비트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간주하고, 수많은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을 고소하면서 업계 전체에 법적 불확실성을 야기했다.SEC의 주장은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기반한다. 하위 테스트에 따르면, △공동 사업에 △돈을 투자하고 △타인의 노력에 따른 △투자 이익을 기대하는 경우 '증권'으로 간주한다. SEC는 코인 발행자의 사업 활동을 통해 코인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해당 코인을 '미등록 증권'으로 판단하고 발행자와 거래자를 미국 증권법 위반으로 처벌하려 했다. 이는 코인 발행 기업들의 사업 전개를 대폭 위축시켰다.
그 결과, 수많은 코인이 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제외하고는 실생활에서 널리 사용되는 코인이 거의 없다. 미국 정부 기관과의 소송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발행자는 소송 리스크를 우려해 사업을 축소하거나 포기했고, 야심 차게 출시된 코인들은 기술적 성과 외에는 뚜렷한 사업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만약 시장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코인들은 사업 성과나 유틸리티에 따라 가치가 매겨졌겠지만, SEC의 무리한 규제 때문에 코인 가격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시장의 관심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특히 리플 소송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리플 소송으로 인해 초기코인공개(ICO)에 대한 법적 리스크가 커지자, 글로벌 시장에서 ICO를 통한 자금 조달이 급감하고, 그 자리를 크립토 벤처캐피털(VC)이 차지하게 되었다. 코인이 처음 발행될 때 대중이 참여하는 ICO 대신 소수의 VC가 투자자가 되면서 거래소 상장 후 VC의 대규모 현금화로 인해 코인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이 심화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특히 VC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적은 유통량과 높은 완전 희석가치(low float, high FDV)'로 설계된 코인이 많이 등장했다. 이는 VC가 저가에 매수한 코인을 거래소 상장 후 대량으로 개미 투자자들에게 고가에 떠넘기는 또 다른 구조로, 국내 거래소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재단 물량 덤핑'과 유사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밈 코인 대유행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났다. 코인의 가격이 사업 성과가 아닌 기대감이나 관심에만 좌우되는 환경을 SEC가 만들었고, 그 결과 사업계획도, 명시된 효용도 없이 자극적인 이름과 로고로 관심을 끄는 코인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게 된 것이다.
SEC는 발행자와 거래자를 한데 묶어 처벌하려 했을 뿐, VC들이 자금력을 동원해 시장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태는 규제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밈 코인은 발행자가 많은 물량을 소유하지 않고, 발행 즉시 대부분을 시장에 배포하는 '공정한 출시(fair launch)' 방식을 택했다. 이는 VC가 개미 투자자를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관행, 더 나아가 이에 대한 투자자 보호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밈 코인 대유행이 시사하는 점
매일 수만 개의 '쓸모없는' 밈 코인이 발행되고 거래되며, 그중 살아남은 코인들의 시가총액 합계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SEC의 규제 실패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이다. 각국 정부는 '코인은 나쁘다'는 도덕적인 판단보다는 이미 형성되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질서를 확립하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했다. 하지만 SEC는 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코인을 '미등록 증권'으로 간주하고 '질식'시키려 했으며, 다른 국가들도 SEC의 방향성을 따랐다. 그리고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각국 정부가 시장 질서 확립에 실패하는 동안, 자본력을 가진 세력들은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국내 거래소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김치코인 재단 물량 덤핑', 최근 심화하는 '펌프 앤 덤프 급등락', 그리고 '적은 유통량과 높은 완전 희석가치(low float, high FDV)' 코인들의 상장 후 현금화 모두 같은 맥락이다. 투자자 보호장치가 미비한 시장에서 '내부자'들이 개미들을 상대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밈 코인 대유행은 시장이 각국 금융 당국에 보내는 메시지다. 코인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억압하려 했던 SEC의 접근 방식은 틀렸으며, 실패했다. 코인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강아지, 고양이, 개구리 코인들은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건전한 사업 주체들을 육성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2014년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총리가 트위터 접근을 차단했을 때, 튀르키예 국민들은 VPN 사용법을 익혀 트위터에 접속했고, 2주 후 트위터 접근은 재개됐으며, 결과적으로 튀르키예의 트위터 사용률은 더 올라갔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이집트, 멕시코,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등 국가들을 위해 마인크래프트(Minecraft) 게임 안에 '무 검열 도서관(Uncensored Library)'을 열어 해당 국가 언론사에서 검열당한 기사들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납득할 수 없는 규제는 실패한다. 시장은 언제나 답을 찾아낸다. 금융당국은 밈 코인 대유행이 던지는 시사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크립토 프레지던트'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닷새 후 시작한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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