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장관 지명자 "北 핵보유국"…흔들리는 '한반도 비핵화'

입력 2025-01-15 15:27   수정 2025-01-15 16: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으로 내정한 피트 헤그세스 지명자가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말했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 청문회에 앞서 사전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핵 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와 핵탄두를 운반하는 미사일 사거리 증대에 대한 강도 높은 집중, 증대되는 사이버 역량은 한반도,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또 "미국의 억지력을 재확립하겠다"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공세를 억지하기 위해 파트너 및 동맹국과 함께 일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지역의 억지력을 빠르게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북정책 변화 예고
북한은 지금까지 6차례 핵실험을 했다. 또 핵탄두도 최소 수십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를 위반해 불법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온 북한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핵보유국이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 왔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감안했을 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포함됐다. 지난 1기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같은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헤그세스 지명자가 서면 답변에서 사용한 '핵 보유국'은 1967년 1월 이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국제법으로 핵무기의 개발과 보유를 인정받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5개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와는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금기를 깼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을 비공인 핵보유국,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보고 있으나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 이를 분명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작년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인도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핵능력 과시 후 기정사실화라는 경로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런 북한의 전략이 목적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가 과거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작성한 정강에서는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았다. 양당이 이전 선거에서 꼬박꼬박 비핵화를 언급했던 것과 달라진 대목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으며 여전히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양당의 해명이었지만, 이 문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미국 내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선 전 트럼프 캠프에서는 '비핵화'라는 목표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북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가로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헤그세스 지명자의 '핵 보유국' 발언이 단순한 상황 묘사일 수도 있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대북 전략 변화를 의미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배경이다.

일단 조 바이든 현 행정부는 북한을 핵 보유국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 소통 보좌관은 이날 오후 외신센터에서 열린 고별 기자회견에서 "그 사안(북핵)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변한 것이 없다"면서 "차기 안보팀이 이를 어떻게 규정할지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바이든 정부)는 이를(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하는 데까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북한은 절대로 핵 보유 지위를 가질 수 없다"
우리 정부는 헤그세스 지명자 발언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 관련해 “북한 비핵화는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원칙”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상 북한은 절대로 핵 보유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은 NPT,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 국제규범을 위반해 불법으로 핵을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우방국들과 긴밀히 공조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도 "한미는 긴밀한 공조하에 북한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은 불변"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국가정보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기 정부의 출범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를 통해 핵동결이나 군축 협상으로 ‘스몰딜’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에 보고하는 등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되면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일부 폐기', 핵능력 시설의 '일부 폐쇄' 등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하고 일부 능력만 감소 및 차단하기 위한 '핵군축' 담판 협상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의 대북정책에도 '완전한 전환'이 불가피하게 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이번 사안을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한반도안보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해 미국 민주당 및 공화당 정강에서도 한반도비핵화가 빠졌듯이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북한 핵군축 협상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받는 일에 더 관심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맹국 국방비 지출 증대 중요"
헤그세스 지명자는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를 언급하면서도 동맹국이 국방에 관해 더 많은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기조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동맹과 파트너의 국방비 지출 증대와 부담 공유는 우리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하다"면서 "강력하고 건강한 동맹은 일방적일 수 없으며, 동맹과 파트너들도 미국이 이를 계속 강조하는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지역 등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태세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주한미군의 규모나 성격이 조정될 가능성을 예고한 대목이다. 다만 주한미군이 꼭 줄어드는 방향이 아닐 수도 있으며, 육군 중심(약 70%)인 주한미군의 해군력이나 공군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지만 소령으로 전역해 장성 경험은 없다. 군대에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관련 인물들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 민주당 측에서는 헤그세스 지명자의 성비위 논란 등을 다양하게 제기했으나, 앞서 청문회 전에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난 맷 게이츠 법무장관 지명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반발이 덜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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