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에는 송년회나 신년회 등 각종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식당 예약 관련해서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바로 ‘노쇼(No-Show)’ 인데요.
‘예약부도’라는 노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제는 일상적인 단어가 됐습니다. 최근에는 단순한 노쇼를 넘어 대량으로 주문한 후 취소하거나 신분을 사칭해 사기범행을 저지르는 등 도가 넘어서면서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횟집을 운영하는 A씨. 신년회를 한다면서 50명 단체 예약이 들어와 기분이 좋았는데요. 150만원 상당의 음식을 준비했지만, 예약 당일 예약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음식은 폐기 처분됐고, 단체 예약으로 인해 손님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요.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경우 A씨의 손해는 정말로 막심해 보이는데요. 예약도 계약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예약을 사전에 연락 없이 일방적으로 지키지 않은 경우에 예약자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임의 범위는 사례처럼 모든 음식을 폐기했다면 준비한 음식값과 인건비 그리고 예약으로 인해 제대로 받지 못한 기회비용(영업손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당시 주고받은 통화기록이나 문자메시지 등 증거가 필요하며, 특히 기회비용의 경우에는 그 예약 때문에 다른 고객의 예약이나 내방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통상 이러한 사실은 예약이나 내방을 거절당한 고객의 협조를 받아 통화 내역이나 진술서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업무방해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예약 당시에 실제로 단체 행사가 예정돼 있었는지, 인원 수 또는 주문한 음식의 양이 실제로 필요한 양이었는지, 업주 측에 거짓 번호를 전달한 것은 아닌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고의 여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쇼 행위가 형법상 사기죄에도 해당하지 않을까 하고 궁금해하실 수 있습니다. 형법상 사기죄는 업주 측을 기망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얻어야 하는데 노쇼의 경우 업주 측을 기망한 것은 맞지만 예약자가 아무런 이익을 얻은 것이 없기 때문에 노쇼를 했다고 해서 바로 사기죄로 처벌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김밥 40줄 주문 후 노쇼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김밥 40줄 예약 주문을 받은 가게 주인은 하루치 매출과 맞먹는 금액의 주문인 만큼 다른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며 김밥 40줄을 만들었지만, 주문자는 나타나지 않았는 데다가 남겨둔 연락처 역시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였습니다. 이러한 경우 주문자는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이 없기 때문에 노쇼로 인해 사기죄로 처벌하기는 어렵지만,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는 처벌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주문자는 지금까지 카페나 떡집 등 여러 업체에서 노쇼 행위를 반복했다는 사실이 밝혀서 고의성이 입증되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이제 대량 주문이나 단체 예약이 들어오면 덜컥 겁부터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라인에는 노쇼 방지를 위한 5계명, 10계명이 공유돼 있습니다. ‘1. 대규모 예약 주문의 경우 계약금은 꼭 받아라. 2. 주문 내용, 취소 가능 시각은 꼭 문자로 남겨라. 3. 주문서는 반드시 작성하라. 4. 주변 업장들과 노쇼 블랙리스트 공유하라. 5. 자영업 단톡방, 커뮤니티 통해 피해 정보 습득하라.’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내용이 공유될까 싶은데, 노쇼를 막기 위한 강력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 예약 전날이나 당일 예약 확인 문자를 보내서 고객이 예약을 잊지 않도록 돕는 ‘리마인드 서비스’나 노쇼 발생 시 일정 기간 예약 제한을 하는 ‘페널티 제도’ 등이 있지만 현재로선 예약금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노쇼 피해를 막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위약금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예약 1시간 전을 기준으로 예약을 취소하면 예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취소하거나 취소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예약금 제도 도입 이후 노쇼 비율이 줄기는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 규정은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 예약금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고객이 많아 노쇼 방지의 근본적인 해결이 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식당 예약 플랫폼들은 ‘예약금 0원 결제’ 기능을 도입했는데요. 식당 예약 플랫폼에 카드를 등록하고 예약금 결제 방법을 ‘예약금 0원 결제’로 선택하면 고객은 예약금을 선결제하지 않고도 식당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대로 식당을 방문하면 예약금이 결제되지 않고, 식당 방문에 앞서 일정을 취소하면 취소 수수료가 부과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식당 대부분이 식당 예약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은 소규모 업체인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합니다.
노쇼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지만 아직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마련되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노쇼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명을 예약했는데 이 중 4명만 왔을 때도 노쇼라고 볼 수 있는지, 그리고 1시간 전 취소와 10분 전 취소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 등 다양한 노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해 보입니다.
최근 정부에서 노쇼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 상반기까지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개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행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다양한 노쇼 상황을 포함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다양한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서 구체적인 위약금 기준과 부과 유형을 세분화해 정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예약 문화는 분명 우리 사회에 편리한 문화입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예약 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상호 간의 신뢰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지킬 수 있는 예약만 하고, 그리고 부득이하게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 최대한 빨리 예약을 취소해 상대방에게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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