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겼다.”
15일 오전 10시40분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일신빌딩 앞.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됐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이곳에 모여 있던 1000여 명의 진보 집회 참가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윤석열을 구속하라” 등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같은 시각 불과 100m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던 6000여 명의 보수 집회 참가자들은 망연자실한 채 허공을 응시했다. 몇몇 대통령 지지자는 “우리 대통령님 어떡해”라며 통곡했다. 이처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양측 지지자들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체포에 대해서도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방한 효과가 뛰어나 집회 ‘필수템’으로 꼽힌 은박 담요를 두르고 밤새 윤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가한 박한일 씨(58)는 “현직 대통령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경찰이야말로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며 “불법 체포영장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차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가했다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2030세대들이 대통령 지지 시위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며 “체포영장 집행의 부당함을 알리겠다”고 했다.
탄핵 찬성 지지자들도 결의를 다졌다. 대학생 이모 씨(24)는 “20대들이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가하면서 여론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청년들의 주류는 여전히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며 “일부 극단적인 세력의 의견이 전체 청년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찬반 집회가 근거리에서 열렸지만 우려한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전 9시30분께 대통령 경호처가 관저 정문 앞 3차 저지선을 내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대통령 지지자들이 관저 진입을 시도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들 지지자는 “왜 이재명은 체포하지 않느냐” “밀고 진입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관저 진입로 앞 폴리스라인에 접근했다. 경찰이 “공무집행 방해로 입건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서자 시위대는 이내 물러나며 추가 진입 시도를 포기했다.
정부과천청사 앞에 모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공수처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싸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오동운 공수처장 체포” “공수처 해체”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밤 공수처 앞에서 한 시민이 분신을 시도해 중태에 빠지는 일도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5분께 정부과천청사 민원인 주차장 옆 잔디밭에서 60대 남성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당시 목격자들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고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성은 전신 3도 화상으로 추정되는 중상을 입고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해당 남성의 신원을 확인하고 목격자 등을 상대로 분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정희원/김다빈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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