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와이오밍주의 시골 마을인 캐머러시(市)는 ‘공사판’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2500여 명이 사는 시골 마을에 10대가 넘는 포클레인과 불도저가 한꺼번에 들어온 건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다. 공사장을 둘러싼 펜스 너머로 ‘테라파워 소형모듈원전(SMR) 공사 현장’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꿈의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SMR 상용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SMR 관련 인허가를 포함한 규제 완화를 약속해서다. SMR은 소형 원전답게 에너지 효율이 높은 데다 사고 확률이 대형 원전의 1만분의 1에 불과해 미래 전력난을 해소할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12조원 안팎인 관련 시장이 2035년 600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캐머러의 SMR이 2030년 가동에 들어가면 30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시간당 345㎿)를 쏟아낸다.
트럼프 2기 때 꽃피울 SMR의 주연은 테라파워 등 미국 SMR 설계·운영 업체지만, 조연은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 등 한국 기업이다. SMR의 핵심 장비인 원자로 지지구조물(두산)과 원자로 용기(HD현대) 등을 한국 기업이 제작해 납품하기 때문이다. SK그룹은 테라파워와 손잡고 SMR을 활용한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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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1호 SMR 작업장’인 미국 와이오밍주 캐머러시(市)의 브라이언 무이어 부시장은 “주민 80%가 SMR 건립에 동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화석연료나 신재생에너지의 절반도 안 되는 전기 생산 비용과 대형 원전 대비 1만분의 1에 불과한 안전성을 감안할 때 SMR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미국 정부와 기업의 설득 노력 덕분이었다.
시장에선 도널드 트럼프 2.0 시대에 SMR 건립 붐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발 전력난을 해결할 최고의 해법이어서다. SMR 시장이 본격 열리면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 DL이앤씨 등 주요 부품 생산과 단지 건설 등을 맡은 한국 기업에도 큰 기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카페 ‘포실 퓨얼’에서 만난 주민 세레니티 베넷은 “안전한 데다 지역 경제도 살릴 SMR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캐머런 SMR이 2030년 가동에 들어가면 시간당 345㎿의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인근에 들어설 데이터센터는 물론 주변 30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용량이다. 테라파워는 SMR 단지 중 처음으로 주정부 허가를 받았고,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SMR로 인한 경제 활성화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테라파워와 미국 정부가 캐머러 SMR에 절반씩 총 40억달러(약 5조8860억원)를 투자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건설 현장에 1600명의 근로자가 매일 투입된다. SMR 운영과 관련한 일자리 300개도 새로 생긴다. 캐머러 SMR 인근에서는 아파트 단지는 물론 지역 주민을 위한 오페라하우스 등 편의시설 건설이 한창이었다.
미국이 SMR 상용화를 앞당기려는 이유는 AI 산업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를 통해 가동되는데, 화석연료나 신재생에너지의 전기 생산 비용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비싼 전기료 탓에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말이 미국 산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SMR은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다. SMR의 발전단가가 석탄의 절반도 안 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대형 원전의 킬로와트시(㎾h)당 발전단가는 72원으로 유연탄(143원)과 태양광(131원)의 절반 수준이다. SMR은 대형 원전 발전단가의 65% 수준으로 추정된다. 대형 원전과 달리 안전성이 검증된 만큼 데이터센터 근처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도 SMR의 강점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모듈 방식의 소형 원전이라 설치 비용도 많이 안 든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의 경쟁, AI 등 미래 산업 핵심 인프라, 저렴한 비용 등을 감안할 때 계산에 밝은 트럼프 당선인이 SMR을 키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미국 SMR 시장이 활짝 열리면 순식간에 다른 나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은 올해 약 12조원인 글로벌 SMR 시장이 2035년 600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SMR 시장에 뛰어든 국내 회사만 SK그룹, 두산에너빌리티, HD현대중공업, DL이앤씨,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여섯 곳이다. 두산과 HD현대는 테라파워 SMR에 원자로 지지 구조물과 원자로 용기 등 핵심 부품 공급 계약을 맺었고, DL이앤씨는 엑스에너지가 설계한 SMR에 대한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을 맡기로 했다. 크리스 레브스크 테라파워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자 원전 분야 모범 국가인 한국이 SMR 시장 성장의 큰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원전도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기간 동안 대형 원전을 짓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기 때문이다. 플랜트 기업 등을 중심으로 국내 기업에도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수소 유통시장 등에 한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캐머러=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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