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일렉트릭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인공지능(AI) 개발사 xAI에 데이터센터용 전력기기를 공급한다. 미국 4대 빅테크 중 세 곳과도 배전반(전기 배분 장치) 납품을 협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으로 미국에서 전력기기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고성능 제품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한국 기업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16일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A사는 작년 11월 충북 청주에 있는 LS일렉트릭 전력기기 공장을 실사했다. 현재 최종 품질 검증 작업을 하고 있다. 계약이 성사되면 올 하반기부터 매년 2000억~3000억원어치 배전반 등을 수년간 납품한다. 배전반은 발전소에서 들어오는 전기를 제어해 데이터센터 등 최종 사용처에 배분하는 장치다.
AI 서비스 고도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4사는 지난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1250억달러(약 182조원)를 투자했다. 전력기기는 AI 데이터센터 투자비의 약 8%를 차지하는 핵심 장비다. 다른 빅테크 두 곳도 LS일렉트릭에 배전반 공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LS일렉트릭은 앞서 xAI의 미국 멤피스 데이터센터에 배전반 부품을 공급한 데 이어 추가 납품을 협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0 시대에는 중국산 전력기기에 60% 고율 관세가 부과되는 만큼 한국 제품 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LS일렉트릭과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 먹는 하마' AI센터發 호재…韓, 가격 경쟁력·유지보수 우위
‘쉴 새 없이 돌아간다’는 말 그대로였다. 지난 13일 방문한 HD현대일렉트릭 미국 몽고메리 공장 근로자들의 손놀림은 느릿느릿한 여느 미국 공장 근로자들과 달랐다. 컨테이너 크기의 초고압 변압기에 달라붙은 10여 명의 용접공이 불꽃을 튀기자 순식간에 방열기와 변압기가 한 몸이 됐다. 반대편에서는 손가락 굵기의 구리 권선을 둘둘 마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45m 높이의 이동형 크레인은 200t짜리 초고압 변압기를 들어 올려 리프트에 싣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만든 2000만달러(약 290억원)짜리 초고압 변압기는 미국 전역에 있는 발전소와 변전소에 들어간다. 공장 관계자는 “5년 치 일감이 쌓여 있어 지금 주문하면 2030년에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 변압기 개폐기 배전반 등 전력기기 품귀 현상을 부른 주인공은 인공지능(AI)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테슬라 등이 AI 기술 고도화를 위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센터에 수십조원씩 쏟아부은 결과라는 설명이다. 2028년 미국 전체 전기소비량의 1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이터센터에는 엄청난 양의 전력기기가 들어간다.
전력 수요가 늘면 전력을 보내고 분배할 때 필수적인 초고압 변압기, 배전반 등 전력기기 시장도 함께 커진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시장 신규 투자액 3402억달러(약 450조원) 가운데 45%(약 200조원)가 미국에서 나왔다. AI 데이터센터 투자에서 전력기기 인프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8%인 만큼 여기에서만 16조원 규모의 새 시장이 열렸다는 얘기다.
이 덕분에 LS일렉트릭과 HD현대일렉트릭 미국 공장에도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방문한 유타주 시더시티의 LS일렉트릭 자회사 MCM엔지니어링Ⅱ 공장은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풀가동’ 상태였다. 2층 설계룸에선 엔지니어 10여 명이 대형 고객사를 위한 ‘맞춤형’ 제품 설계에 한창이었다. 브라이언 블랙 MCM엔지니어링Ⅱ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최근 배전반 등 전력기기 생산능력을 두 배 확대했다”고 말했다.
이튼, 슈나이더, 지멘스, ABB 등 전력기기 ‘빅4’가 나눠 먹던 시장 구도가 깨지기 시작한 건 한국 기업에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빅4에 전력 인프라를 의존해온 빅테크가 최근 들어 한국 기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AI 데이터센터를 워낙 많이 짓다 보니 빅4만으론 필요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빅테크 A사가 지난해 4분기 10여 명의 인력을 이끌고 LS일렉트릭 충북 청주 공장을 다녀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미국 전력업계 관계자는 “빅테크들은 전력기기 빅4의 과점 구조와 느린 서비스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LS일렉트릭과 HD현대일렉트릭 등 국내 기업의 저렴한 가격과 빠른 애프터서비스를 경험한 만큼 앞으로 주문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은 ‘트렉 레코드’를 앞세워 현지 고객사를 적극 공략하고 있다. 미국 공장 건설 붐이 불던 2020~2023년 삼성과 LG, SK의 미국 공장에 전력기기를 공급한 경험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이 법인장은 “LS일렉트릭이 납기를 잘 맞추는 것에 발주기업들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퍼 2기 행정부가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더라도 한국 기업에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건설사 터너컨스트럭션에서 전력사업을 담당하는 카엘 한센 매니저는 “중국산에 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는 만큼 한국 기업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배스트럽·시더시티=박의명/황정수/김채연 기자/몽고메리=김진원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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