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역화폐 ‘원조’ 격인 경기 성남시는 올해 지역화폐를 역대 최대인 7500억원어치 발행한다. 작년(2100억원) 대비 세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당초 올해 2500억원어치 발행이 목표였지만 1분기에 5000억원어치를 추가 발행하기로 했다. 경기도 내 누적 발행량 1위인 화성시는 올해 5000억원어치 지역화폐를 발행한다. 작년에 추정한 3000억원보다 2000억원어치 늘렸다.
지역화폐는 지역 내 가맹점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면 결제액의 최대 10%를 할인해주거나 캐시백 등으로 돌려주는 상품권이다. 할인 금액을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는 발행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경북 포항시는 작년 2300억원에서 올해 2000억원으로, 경주시는 1300억원에서 700억원으로 발행 규모를 축소했다. 지역화폐 할인율을 낮추거나 인당 구매 한도를 줄이는 지자체도 속출하고 있다.
재정 형편이 좋은 지자체만 발행 규모를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지역 간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인근 지역 주민도 거주지 제한 없이 지역화폐를 살 수 있어 지자체끼리 소비를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간 부익부 빈익빈 부추기는 지역사랑상품권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에선 백화점 대형마트 유흥업소 등을 제외한 업소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유통 활성화를 위해 액면가 대비 5~1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할인율만큼의 비용은 지자체가 예산으로 부담한다. 할인율이 10%이면 10만원권 지역화폐를 소비자가 9만원에 사는 식이다.
애초 이 사업은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편성해 시행했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 고용위기 지역인 경남 고성 등 네 곳에 국비 100억원을 지원하면서 국비 지원이 본격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비 지원액이 급증했다. 전체 발행액도 2019년 3조2000억원에서 2022년 27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정 낭비 등 부작용만 키운다고 봤다. 국비 지원도 2021년 1조2522억원에서 2023년 3522억원, 작년 3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애초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지만 여야 협상 과정에서 3000억원이 증액됐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도 관련 예산을 일절 편성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2조원의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맞섰다. 지난해 12월 헌정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편성도 지역화폐 예산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지역화폐가 지역 밖에서 이뤄지던 소비를 지역 내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자체 간 ‘제로섬’ 게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12월 보고서에서 “지역화폐 도입으로 지역 내 매출 증대 효과가 생기면 이는 인접 지자체의 매출 감소를 대가로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 성남시와 화성시가 지역화폐 발행량을 수천억원씩 늘리면 인접 지자체의 매출을 빨아들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한다는 뜻이다. 지역화폐 구매엔 거주자 제한이 없다.
올해 지역화폐 발행액이 가장 많은 성남시와 화성시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각각 4위와 2위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나치게 많이 발행하면 재정 여력이 빠듯한 지자체는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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