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현지에서 입수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에게 인근 군부대 명칭을 대며 자신을 군인으로 소개하고 대량 주문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예컨대 철물점엔 "제설작업을 위해 각삽 20개, 막삽 20개, 곡괭이 20개가 필요하다"고 대량 주문을 낸다.
신뢰를 얻기 위해 위조 공문서도 활용한다. 부대명과 담당자 명칭 등이 담긴 부대 물품 공급 결재 확약서와 부대정비 소모품 구매 승인서 등을 카카오톡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후 물건을 받을 날짜가 다가오면 은근슬쩍 "부대 사정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으니 전투식량을 대신 주문해 달라"며 "며칠 전 주문한 물품을 찾으러 갈 때 함께 결제하겠다"고 부탁한다. 그러나 군인이 자영업자에게 안내하는 전투식량 업체 역시 사기조직이 만들어낸 가짜 업체다.
자영업자가 대리구매를 거절할 경우 동정심을 자극하며 설득한다. "훈련에 차질이 생기게 돼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며 "상사 진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하소연하는 식이다.
자영업자는 결국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사비로 가짜 전투식량 업체에 돈을 보내게 된다. 이후 군 간부를 사칭한 사기범과 전투식량 업체 역할을 맡은 사기범 모두 잠적하며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자영업자가 의심할 경우엔 "부탁조의 말투는 좋지 않으니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라", "고객의 말을 끊어가면서라도 확실하고 간결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대응 요령까지 마련해 둔 것으로 나타났다. 거액의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자영업자 심리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본지에 해당 시나리오를 제공한 캄보디아 교민 A씨는 "전문적으로 사기를 치는 조직원들은 모든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짜인 대본을 기반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교민들에 따르면 해당 시나리오는 지난해 말부터 현지에서 암암리에 퍼져 프놈펜, 시아누크빌 등 주요 도시에 위치한 범죄 단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강원경찰청도 범행 배후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캄보디아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리딩방, 로맨스스캠 등 각종 사기 범죄의 신(新)거점으로 떠오른 동남아 국가다. 대규모 단지에서 수십~수백 명의 한국인이 숙식하며 전문적으로 사기 시나리오를 기획해 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국인 1000여명이 캄보디아에서 사기 범행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범행을 저지른 조직이 해외에 있어 소상공인들의 피해 복구는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하위 조직인 자금 세탁책과 현금 수거책은 국내에 있지만 사기 기획과 총괄은 해외 조직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해외 조직 검거와 피해금 회수를 위해서는 현지 경찰과의 공조 및 외교적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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