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안'에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할지 여부를 놓고 다음 달 3일 열리는 당내 정책 디베이트(토론회)를 주재한다.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를 주제로 찬반 토론을 주재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 대표가 특정 정책 사안을 놓고 벌이는 공개 토론회를 직접 주재하며,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데는 다각적인 정치적 노림수가 깔린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양쪽 의견을 모두 경청하는 합리적 리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 이벤트라는 평가다.
오는 3일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 주제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고연봉 연구개발(R&D) 직종에 한해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예외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 간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R&D 역량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했다. 반도체 업계도 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반도체 업종을 대상으로 예외를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주 52시간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에 찬성하지만, 민주당은 당내 의견이 갈린다. 경제·산업 관련 상임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골든 타임을 놓치면 뒤늦게 지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며 "제한적으로라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계 출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등을 중심으로는 반대 입장이 명확하다. 제도 시행과 폐지·유지를 놓고 민주당 내 의견이 팽팽히 갈렸던 금융투자소득세 논란 때와 유사한 기류다.
이런 사안에 대해 이 대표가 직접 토론회를 주재하는 건 정치적 노림수가 명확하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논란이 되는 이슈에 대해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모습을 보여줘 '합리적 리더' '균형잡힌 리더'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평가다. 민주당의 정책 디베이트는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쟁점이 되는 사안이 있으면 양쪽 의견을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평소 생각"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놓고 산업계과 노동계가 충돌하는 데 대해 "토론을 해보면 합의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양쪽 얘기를 들어보고 판단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앞서 '상법 개정 정책 디베이트'를 주재할 때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에 우려하는 경영계와, 이에 찬성하는 소액주주 측에 직접 질문하며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때도 "합리적 결사결정에 이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었다.
이 대표가 찬반 입장을 모두 들은 상법 개정안도 결국 '답정너'로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쪽으로 결론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2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법 개정안을 한 차례 상정해 논의했지만 여당 반대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만간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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